[강헌의 가인열전]<7>김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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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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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삶에 남긴 짙은 목소리
비가 내리면 더 그리워진다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가 1980년의 어두운 사회를 위안할 바로 그 즈음 슬며시 발표된 김현식의 데뷔 앨범을 주목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무려 5년 뒤 들국화가 화려하게 데뷔하기 직전 그의 두 번째 앨범이 나왔을 때 그의 이름은 바로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의 가장 중대한 사건인 ‘언더그라운드’와 동의어가 될 채비를 완료했다.》

캐리커처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캐리커처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눈을 감는 순간까지 끝없는 자유와 반항을 동경했던 김현식은 진정한 언더그라운드였다. 동아일보DB
눈을 감는 순간까지 끝없는 자유와 반항을 동경했던 김현식은 진정한 언더그라운드였다. 동아일보DB
리고 그가 지병으로 이승을 마감하고 유작이 된 여섯 번째 앨범(1991년)이 요절의 신드롬과 함께 더블 밀리언셀러의 폭풍을 몰고 왔을 때, 1980년대 중후반을 휘저었던 이 질풍노도의 신화는 그의 하관과 함께 저물었다.

그의 노래 대부분이 록의 정통주의적 흐름에서 벗어나 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세계에 대한 태도의 측면에서 그는 완벽한 로커였다. 그는 방송과 음반사의 천민적 권력의 전횡을 애당초 무시해버렸으며 시장의 소녀적 취향에 대해 일고의 배려가 없었다. 그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저 1960년대 우드스톡의 끝없는 자유와 반항을 동경했던 것이다.

김현식은 그의 출세작이 된 두 번째 앨범의 ‘어둠 그 별빛’이나 그를 반석에 올려놓은 세 번째 앨범의 ‘비처럼 음악처럼’ 같은 대표곡에서 드러나듯이 블루스에 기반한 슬로 템포 록의 비경을 전해 주었다. 그 여유로운 템포 속에서 그는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소리꾼의 힘과 기교를 아로새겼으며 그로부터 기인하는 보컬의 카리스마는 수많은 어린 추종자를 낳았다.

그러나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는, 사실상의 마지막 앨범인 다섯 번째 앨범(1990년)에 이르러 그는 짧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자신의 삶의 내면을 일필휘지로 내보인다. 시계의 초침 소리가 임박한 임종을 암시하는 가운데 흐르는 짧은 독백과 한 호흡으로 제시되는 그 특유의 상승하는 주제 선율, 그리고 박청귀의 일렉트릭 기타와 호응하며 포효하듯이 일어서는 후렴의 사자후…. 그 자신에 의한 이 ‘넋두리’ 한 곡만으로 그가 펼쳤던 날개가 얼마나 많은 이의 감관을 휘감았는지 알아채는 데 충분하다.

하지만 그는 서구 사조의 단순 수입상에 머물지 않고 그 자신만의, 나아가 우리의 숨결을 불어넣고자 하였다. 저주받은 걸작인 데뷔 앨범의 명곡 ‘봄, 여름, 가을, 겨울’이나 4집의 ‘우리네 인생’, 그리고 5집의 ‘도시의 밤’과 같은 전형적인 로큰롤 곡에 면면히 흐르는, 무어라 규명할 수 없는 ‘한국인’의 향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그는 ‘향기 없는 꽃’을 통해 이렇게 읊조리는 것이 아닐까? ‘겉이 화려할수록 진실 메말라 있고/겉이 화려할수록 향기 간 곳 없으니/향기 없는 꽃이여/그대의 진실은 은밀함에 있어/부러움 한 몸에 받을 수 있다오….’

길들여지지 않는 좌충우돌 스타일의 김현식을 음악적으로 완성시키는 데엔 동아기획군단의 젊은 뮤지션들이 쟁쟁하게 포진하고 있었다. 3집 최고의 절창인 ‘가리워진 길’의 작곡가 유재하를 비롯하여 그의 백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멤버들, 그리고 ‘송대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사랑과 평화 출신의 음악감독 송홍섭. 특히 백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은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에 비견하는 슈퍼세션으로 여기에서 김종진 전태관이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밴드로 독립하고 장기호와 박성식은 빛과소금이라는 또 하나의 밴드로 발전한다.

그리고 이정선 엄인호 등과 함께 참여한 신촌블루스에서의 ‘골목길’ 같은 불후의 가창이나 권인하 강인원과 남성 트리오로 호흡을 맞췄던 ‘비오는 날의 수채화’는 김현식이 정규 앨범 외에 우리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이 되었다.

전인권의 압도적인 절창을 앞세운 들국화가 언더그라운드 신화의 기폭제가 되었다면 김현식은 이 신화의 완성자였다. 그리고 너무나 빨리 찾아온 그의 죽음은 바로 그 폭풍을 마감하는 구두점이 되었다. 그가 생을 마감하고 두 달 후에 발표된 유작은 ‘내 사랑 내 곁에’의 간절한 음악적 유언에 힘입어 1991년 내내 차트 톱을 지키며 엄청난 판매를 기록한다. 그리고 시대의 바통은 서태지라는 새로운 세대의 문화 아이콘으로 넘어가면서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는 짧은 전성시대를 마감했다.

결코 길지 않지만 그렇다고 짧지도 않았던, 11년에 걸친 그의 굵직한 활동기간은 바로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위대한 역사였던 것이다.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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