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세계 패션 수도 최신 트렌드 살펴보니…뉴욕 패션 숍은 ‘스토리 천국’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9일 03시 00분


상상이 넘쳐 즐겁고… 쉼터가 많기에 여유롭다

소호에 있는 ‘올세인츠 스피털필즈’ 매장.뉴요커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영국 브랜드는 빈티지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와 고전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소호에 있는 ‘올세인츠 스피털필즈’ 매장.뉴요커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영국 브랜드는 빈티지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와 고전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7월의 뉴욕은 뜨거웠다. 섭씨 40도. 거칠게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뉴욕의 패션 거리를 발로 누볐다. 19일부터 사흘간 뉴욕의 패션숍들을 돌아보고 난 후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었다. 이야기, 유머, 그리고 위안.

브랜드들은 각각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작은 디테일들은 때로 웃음을 줬다. 매장의 한 자리를 당연한 듯 차지하고 있는 향초와 아로마 제품들은 휴식과 편안함을 갈구하는 뉴요커들의 간절함을 보여주는 듯했다.

빈티지, 켜켜이 쌓아가는 이야기들


뉴욕에는 저가의 패스트패션부터 럭셔리 브랜드까지 그야말로 다채로운 패션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그 가운데 소호에 있는 패션숍들은 자기만의 색깔이 또렷하다. 소호는 휴스턴의 남쪽(South of Houston)을 줄인 말로, 고급 브랜드부터 신예 디자이너들의 브랜드까지 다양한 브랜드가 어우러져 있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그렇다 보니 부동산 가격이 높아져 젊은 디자이너들은 임대료가 싼 곳을 찾아 바깥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소호에 큰 규모로 들어서 있는 영국 브랜드인 ‘올세인츠 스피털필즈’ 매장은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요즘 뉴요커들이 열광하는 브랜드다.

매장 곳곳에는 수많은 낡은 재봉틀과 실을 감아 놓았던 실패가 장식돼 있다. 시계처럼 생긴, 출근 도장을 찍던 기기도 붙어 있다. 옛날 극장 의자 3개도 떼어서 갖다 놨다. 극장 의자 등받이에는 좌석 번호도 그대로 붙어 있다. 소품 하나하나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오래된 물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패드가 여기저기 설치돼 있어 손가락만 갖다대면 여러 제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FSC(Freemans Sporting Club)’는 이발소에 옷가게가 들어선 매장이다. 실제 옷가게 한편에는 이발소가 영업을 하고 있다. 머리를 깎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세월의 흔적이 있는 이발소를 그대로 살리고 손때가 묻은 낡은 의자도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양 놓여 있다.
뉴욕의 고급 패션거리인 블리커 스트리트에 있는 ‘래그&본’ 여성복 매장. 이 브랜드는 클래식하고 멋스러운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뉴욕의 고급 패션거리인 블리커 스트리트에 있는 ‘래그&본’ 여성복 매장. 이 브랜드는 클래식하고 멋스러운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리창 앞에는 모래로 작은 성벽을 만들었다. 모래성벽 밖에는 작은 공룡 인형들이 성벽을 향해 서 있다. 성벽 안에는 근육질 남자 인형들이 서 있는데, 공룡과 싸우기 위해 준비하는 거란다. 셔츠와 바지 등은 편안하면서도 클래식한 느낌을 준다.

챙이 넓은 모자에 멜빵바지를 입고 마치 톰 소여 같은 복장을 한 점원이 반긴 곳은 랄프로렌이 만든 빈티지 아메리칸 스포츠웨어라인인 ‘더블RL’ 매장.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디자이너 랄프로렌의 휴식처인 ‘더블RL’ 목장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브랜드답게 어릴 적 봤던 미국 영화나 만화 속 주인공들이 입었을 법한 옷들이 진열돼 있었다. ‘더블RL’에서 첫번째 R는 랄프(Ralph), 두번째 R는 랄프로렌의 아내 리키(Ricky) 로렌의 이니셜을 각각 가리킨다.

매장 입구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여성이 손님을 맞고 있는 ‘오프닝 세리머니’도 독특한 곳이다. 호객 행위가 별로 없는 뉴욕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흥미로운 장면이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 지하 매장으로 들어서자 각종 브랜드들이 즐비했다. 우주의 행성이 폭발하는 듯한 강렬한 디자인의 셔츠들이 눈길을 끌었다.

유명 패션 거리인 블리커 스트리트에는 ‘래그&본’ 브랜드의 남성용, 여성용 매장이 나란히 있다. 미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래그&본은 뉴욕의 감성을 살리면서도 군대의 느낌, 전통 재단사, 영국의 이미지 등을 복합적으로 구현했다. 캐주얼하면서도 직선의 느낌을 강조해 심플하면서도 세련됐다. 테니스공과 테니스 라켓으로 쇼윈도를 장식해 고전적인 듯하면서도 활기찬 브랜드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웃음, 그리고 쉼


공장과 택시 회사들이 밀집했던 첼시 지역은 문화와 예술의 힘으로 드라마틱하게 바뀐 곳이다. 예술가들이 밀집한 곳답게 패션숍들도 즐비하다. 더위에 지쳐 늘어진 발걸음을 옮기다 ‘리모랜드’ 매장의 간판을 본 순간 멈춰섰다. 웃음이 났다. 이 매장의 캐릭터인 ‘미스터 리모(아래 사진)’는 파란 색깔에 이빨을 드러내고 납작하게 눌린 얼굴로 개구쟁이처럼 씩 웃고 있었다. 만화에 나오는 장난꾸러기 악동처럼. 리모에 매료돼 매장에 들어서자 신선한 세계가 펼쳐졌다. 원색을 많이 사용한 리모랜드의 제품은 깔끔하면서도 산뜻한 디자인이 매력적이었다.

청바지 등 진 제품을 파는 ‘진숍’에는 손님들을 위해 양주와 잔을 마련해 놓았다. 술을 한잔 마시고 긴장을 풀고 쇼핑을 하라는 배려(?)였다. 술을 들이켠 후 느슨해진 마음에 지갑도 훨씬 쉽게 열릴 것이다. 고도의 마케팅 기법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냥 즐기자며 모르는 척 손을 내미는 듯한 모습이 유쾌했다.

첼시에 자리한 고급 편집 매장인 ‘제프리’에는 매장 가운데 작은 분수가 있어 동전을 던질 수 있다. 대형 쇼핑몰이 아닌 아담한 편집숍에서도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비는 이벤트가 가능한 것이다. 매장 한편에는 DJ가 음악을 골라 자신의 취향대로 변주가 가능하도록 마련한 시설도 있었다. DJ석 앞에는 최근 유행하는 음악을 담은 CD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뉴욕의 상당수 패션숍에서는 DJ들이 음악을 틀어주며 귀를 즐겁게 만들어준다.

제프리를 비롯한 뉴욕의 패션숍 매장에는 향초와 아로마 제품이 필수 제품처럼 진열돼 있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뉴요커들은 맹렬하게 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글 같은 뉴욕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래야 한다. 고된 일을 마친 후에는 정신적인 안정과 휴식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이런 추세는 최근 더 가속화되고 있다고 한다.

블리커 스트리트에 자리 잡은 많은 매장 앞에는 애완동물용 물그릇이 있다. 강아지를 데리고 쇼핑하거나 산책하는 이들을 위한 작은 배려였다. 동물들의 목마름까지 챙기는 모습에서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뉴욕의 패션숍들은 패션이 토털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한다는 것을 직접, 그리고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었다.

글·뉴욕=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사진·뉴욕=김재현 타임스퀘어비주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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