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계적으로 자연 기후 환경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인간의 힘으로 뭐든지 가능할 것 같았던 환상이 예측하지 못한 불확실성에 의해 깨지면서 이제 현대문명은 신기루 속에 쌓아올린 바벨탑처럼 무기력하게만 보인다.
그러다 보니 과거 바닷가에서는 거친 파도를 숭배하고, 깊은 산속에서는 그곳을 지배하는 맹수를 경외하고, 고립된 높디높은 고원에서는 날개가 있는 날짐승을 경배하듯이 자연, 순수 그대로의 모습, 원시의 상태에서 새로운 미적 가치를 발견하게 됐다.
원시(原始)주의는 본래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투박함과 발전되지 않은 순수함을 뜻한다. 예술의 범주에서는 세련되지 못한 미숙함을 가리키기도 했다. 하지만 선사시대 인류의 시발(始發)을 뜻하는 원시주의 미술이나 고도문명 이전의 원주민 사회에서 계승하고 있는 부족미술(Tribal Arts)과는 달리 근현대 미술을 통해 원시주의는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창조를 위한 무한한 영감의 원천을 제공했다.
박물관의 유리에 갇힌 유물을 보며 원시주의의 숨결을 차갑게만 느꼈던 것에서 탈피해 적극적으로 원시의 장소를 찾아 떠났고 시커멓게 치솟는 유전을 발견하듯이 화가 고갱은 타히티의 원시적인 모습에서 잃어버렸던 인간적인 가치와 그 원시성의 아름다움을 낭만적인 요소로 풀어냈다.
패션에서도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식물줄기와 털가죽으로 나체를 감쌌듯이 원시주의적인 미적 욕구의 발현은 인류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현대에도 여름에는 시원한 왕골 소재로 바구니를 짜고 모자를 엮어 단골 패션 액세서리로 사용하고 겨울이면 부피감 있는 모피 소재를 목과 어깨에 둘러 장식했다. 오늘날 많은 디자이너가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새로운 소재로 원시주의를 표현한다. 모피 소재를 쓰지 않더라도 그 특이한 동물적 문양과 질감을 옷감에 프린트하기도 하고 옷감을 식물 소재 엮듯이 꼬거나 끈처럼 자유롭게 연결하기도 한다. 깃털이나 조개껍데기 같은 자연 상태의 재료를 사용해 입체적인 볼륨감은 살리면서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분출해 자유로운 감성을 표출한다.
원시주의 패션은 자연을 모방하기보다는 자연의 경배를 통해 겸손함을 배우고 새로운 독창성을 찾는 살아 숨쉬는 생명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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