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사는 추형근 씨(39)는 매년 여름 가족과 함께 서울을 다녀간다. 두 아들 헌우(11)와 헌호(3)가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려는 뜻에서다. 해외여행을 자주 갈 처지는 아니다 보니 대형 박물관이나 과학관, 전시회 등이 몰려 있는 서울로 향하곤 했던 것. 올해도 광복절 연휴에 맞춰 서울을 찾았다.
그런데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막상 몇 년째 서울행이 반복되다 보니 딱히 갈 만한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63빌딩은 지난해에 다녀왔고, 국립중앙박물관은 지지난해에 갔었지. 남산도 몇 해 전에 올라갔고, 광화문광장이나 청계천은 딱히 볼 게 없을 텐데….’ 추 씨 가족은 결국 아이들의 외삼촌 집에서 하루를 머문 뒤 대구로 내려가던 길에 경북 문경에 들렀다. 다행히 문경의 드라마촬영소와 카트랜드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지만 내년부터는 서울행을 진지하게 재고할 작정이다.
어느덧 여름방학 끄트머리. 어린 자녀들을 둔 학부모라면 서울이든 지방이든 추 씨 같은 고민을 한 번쯤은 해봤음직하다.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으면서 교육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장소가 어디 없을까. 값이 싸다면 금상첨화이고.
물론 있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알지만 대다수는 그냥 지나쳐버렸던 알짜배기 즐길 거리가 서울 도심 곳곳에 숨어 있다. 동아일보 주말섹션 ‘O2’는 광화문 주변으로 즐비한, 그렇지만 서울 사람들도 잘 모르는 그런 장소들을 소개한다. 지갑이 얇아도 걱정 말라. 대부분 무료이기 때문이다. 비 소식이 잠잠해진 이번 주말, 지도 하나 챙겨들고 아이들과 함께 광화문으로 나서보자.
○ 세종, 충무공과 함께 역사체험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2∼4번 출구로 나오면 곧바로 펼쳐지는 광화문광장. 뜨거운 여름엔 충무공 동상 앞 분수에서의 물놀이만으로도 아이들은 마냥 즐거워한다. 그런데 이곳의 진정한 볼거리는 지상이 아닌 지하에 있다.
청와대 사랑채, 녹색성장체험관, 금융사박물관(위쪽부터)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2009년 한글날(10월 9일)과 이듬해 충무공 탄실일(4월 28일)에 각각 맞춰 개관한 전시공간 세종이야기와 충무공이야기는 두 거목의 삶과 업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세종이야기는 △인간 세종 △민본사상 △한글 창제 △과학과 예술 △군사정책 △한글갤러리 △한글도서관 등 7개 공간으로 나뉜다. 한글갤러리에서는 현재 설치미술가 강익중 작가의 한글 설치 미술 ‘내가 아는 것’(9월 4일까지)이 전시되고 있다. 충무공이야기는 △성웅 이순신의 생애 △조선의 함선 △7년간의 해전사 △난중일기를 통해 본 인간 이순신 △이순신의 리더십 △4차원(4D) 체험관 등 6개 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할 만한 것은 체험 프로그램들이다. 500원(유니세프 기부)만 내면 ‘세종의 어록이 담긴 나만의 부채 만들기’ 프로그램(9월 4일까지)에 참여해 간단한 종이접기 방식으로 시원한 부채를 직접 만들 수 있다. 한글갤러리를 방문한 어린이들에겐 강 작가의 ‘희망의 벽’ 설치 작품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 가로 세로 3인치 크기의 하얀 종이에 나의 꿈을 한글로 쓰면 이 종이가 미술 작품 일부를 장식하게 된다. 20분마다 관객을 받는 4D 체험관에선 3D 영상(8분)을 보는 동안 물과 공기가 뿜어지고, 좌석이 흔들리기까지 한다.
○ 알찬 교육 원한다면 박물관으로
종로구 신문로2가의 서울역사박물관은 지난해 7월부터 기획전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료로 개방되고 있다. 휴대용 음성안내기도 무료 대여가 가능하다.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고 싶다면 이곳을 찾아가보자. 2009년 8월 개관한 ‘도시모형영상관’은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정교한 모형에 첨단 정보기술(IT)을 결합해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서울역사박물관을 제대로 이용하려면 예약을 하는 게 좋다. 7세부터 초등학교 3학년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해설’은 하루 전까지만 예약(선착순 마감)하면 된다. 1시간 정도 소요되는 이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용어와 내용으로 진행된다. 방학 기간인 27일까지는 하루 두 차례(오전 10시 반, 오후 3시 반), 28일부터는 하루 한 차례(평일 오후 3시 반, 토요일 오전 10시 반) 이용할 수 있다. 예약은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시스템 홈페이지(yeyak.seoul.go.kr)에서 받는다.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5번 출구 옆의 농업박물관은 우리나라 농촌 전통문화와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2000여 점의 농경유물과 농기구, 민속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지하 1층은 우리나라 대표 농산물을 전시한 농협홍보관, 지상 1층은 신석기시대 이후 현대까지의 농경 역사를 압축한 농업역사관, 지상 2층은 100여 년 전 우리나라 농촌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농업생활관으로 각각 구성돼 있다. 이곳에도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방학 기간인 26일까지는 월∼금요일 오후 2시에 초등학교 3∼6학년 대상의 농업역사체험교실이 열린다. 참가비는 1만 원. 9월부터는 토요일 한 차례(오후 2시), 일요일 두 차례(오전 10시 반, 오후 2시) 진행된다. 신청은 농업박물관 홈페이지(www.agrimuseum.or.kr)를 통하거나 전화로 하면 된다.
광화문역 6번 출구로 나가면 신한은행 건물 3, 4층에 있는 한국금융사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전통, 근대, 일제강점기, 광복 이후로 나눠진 금융사(史)실과 화폐전시관은 우리나라 금융의 발전사를 총망라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도전 퀴즈박사 △화폐 문양 찍기 △내 얼굴이 나오는 지폐사진 등 소소한 체험거리를 만날 수 있다. 경제에 관심이 있는 자녀가 있다면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건물의 화폐금융박물관을 추천한다. 1, 2층의 전시실 세 곳에서는 화폐의 일생과 금(金)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다. 세계 170여 개국의 화폐와 진귀한 화폐, 기증 화폐, 화폐기기 등 볼거리도 많다. 매일 2회(오전 11시, 오후 3시)에 걸쳐 개별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1시간 길이의 전시설명회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20일 오후 1시 반부터는 박물관 1층 세미나실에서 ‘초등학생을 위한 교과서 클래식 음악감상회’도 열린다.
○ 서울 도심에서의 문화 산책
광화문역 2번 출구로 나가면 KT빌딩 1층에 나란히 위치한 KT올레스퀘어와 녹색성장체험관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KT올레스퀘어에서는 매주 목∼일요일 저녁에 수준급 음악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토크 콘서트가 열린다. 온라인 예매와 현장 구매가 모두 가능한 이 콘서트의 관람료는 단돈 1000원. 매월 2차례 기획하는 ‘드림 스테이지’는 20, 30대 젊은이들에게 인기다. 9월 8일에는 ‘곡선이 이긴다’의 저자인 유영만 한양대 교수(교육공학과)의 강연과 여성 전자바이올리니스트 하림 씨의 공연이 준비돼 있다. 같은 달 22일에는 ‘꿈 PD’로 잘 알려진 채인영 박사(소아청소년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강연에 나선다.
2년 전 개관한 녹색성장체험관은 그린 홈, 녹색교통, 녹색성장의 미래 등 7개 분야 40여 개 체험 및 전시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다. 각 기관 및 단체 연수나 외국인 대상 홍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환경교육의 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여유가 있다면 조금만 범위를 넓혀보자.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로 나와 청와대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청와대 사랑채가 나온다. 여기서는 역대 대통령들의 발자취와 수도 서울의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주변 산책로 또한 추천할 만하다.
광화문 인근에는 해외 공관들이 운영하는 문화원도 많다. 경복궁역 7번 출구에서 가까운 종로구 내자동의 중국문화원, 종로구 신문로1가 흥국생명 빌딩 4층의 영국문화원, 숭례문과 마주보는 우리빌딩 18층에 있는 프랑스문화원 등이 대표적이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 info
세종문화회관은 지난해부터 광화문 인근 박물관, 전시관, 공연장 등 47개 문화기관과 연계한 ‘세종벨트’ 문화사업을 벌이고 있다. 특히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는 ‘광화문 S-데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펼친다. 특히 30분에 한 번씩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출발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면 ‘덕수궁→정동길→난타전용극장→서울역사박물관→청계광장→광화문광장→국립고궁박물관→청와대 사랑채→국립민속박물관→경복궁→세종문화회관’ 코스를 연극배우의 설명을 들으며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세종벨트 홈페이지(www.sejongbelt.com)에 접속하거나 광화문광장 지하의 세종벨트 통합 티케팅 인포센터를 방문하면 20∼50% 할인된 가격에 문화패키지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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