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이 책]해저 5000m, 또 다른 우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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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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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전쟁/사라 치룰 지음·박미화 옮김/343쪽·1만5000원·엘도라도

김웅서 한국해양연구원 선임연구본부장(왼쪽), ‘불타는 얼음’으로 불리는 심해의 에너지자원 메탄 하이드레이트. 독도 주변 등 한반도 해역에도 엄청난 양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한일 간 독도 영유권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동아일보DB
김웅서 한국해양연구원 선임연구본부장(왼쪽), ‘불타는 얼음’으로 불리는 심해의 에너지자원 메탄 하이드레이트. 독도 주변 등 한반도 해역에도 엄청난 양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한일 간 독도 영유권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동아일보DB
심해에서 전쟁이라도? 무더위를 식힐 만한 과학소설(SF)이 새로 출간되었나 하고 펼쳤던 이 책은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논픽션이었다. 비록 총성은 들리지 않지만 심해에서는 불꽃 튀는 전쟁이 진행 중이다. 내로라하는 나라들이 해양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전인미답의 심해까지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 것이다.

심해는 인간이 지구상에서 아직 정복하지 못한 마지막 장소이며, 우주보다 더 신비에 싸인 공간이다. 그래서 심해를 지구 밖의 우주 공간에 빗대어 ‘지구 속의 우주’라고도 부른다. 단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심해가 신비로운 것은 아니다. 해양과학기술의 발달로 그 속살이 드러날수록 심해는 더욱 신비롭게 느껴진다. 심해를 탐사하다 보면 곳곳에서 기상천외한 모습의 생물을 만날 수 있다. 우주탐험에서는 누릴 수 없는 호사다.

이제 심해는 신비의 장막을 걷고 현실의 장이 되었다. 온갖 보물을 간직한 채 영겁의 세월을 암흑과 고요 속에 지내온 심해에 인간이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암흑의 세계에는 잠수정 불빛이 비치기 시작했고, 고요하던 곳에서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인간이 보물창고인 심해에서 무엇을 얻고자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지 조목조목 알려준다.

책을 따라 심해로 들어가 보자. 심해에는 노다지 금광이 있다. 독일의 과학자들은 뉴질랜드 인근 바닷속 열수분출공을 탐사한다. 심해저에서 뜨거운 물이 솟아나오는 열수분출공 주변에는 금, 백금, 은을 비롯해 다양한 금속자원이 매장된 열수광상이 있다. 금과 은이 바닷속에 무진장 있다니, 사람들이 이곳을 가만히 놓아둘 리 없다.

이곳은 생물자원 또한 풍부하다. 열수분출공 주변은 심해의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여느 심해저와는 달리 수많은 해양생물로 붐빈다. 이 중에는 지구 생명체의 탄생 비밀을 간직한 것도 있고, 우리가 산업적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도 많다. 그러나 심해 환경 파괴로 지구에 앞으로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저자는 무분별한 심해 자원개발에 경종을 울리며, 하루빨리 환경보전과 자원개발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 찾기를 촉구한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해의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해 주변 국가들은 벌써부터 영유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북극해에는 무궁무진한 자원이 잠자고 있고, 얼음 바다가 녹으면 선박 항로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자국 잠수정을 이용해 북극해 바닥에 러시아 국기를 꽂았으며,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등은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지구의 어느 구석 하나 조용한 곳이 없다.

독도 영유권 문제, 속칭 ‘불타는 얼음’이라고 하는 메탄하이드레이트 때문에 동해에서 일어난 한국과 일본의 갈등도 이 책은 소개한다. 지금 우리의 뇌리에서 잊혀졌을지도 모르지만 2006년 한국과 일본 사이에 독도 인근 해상에서 해양자원조사를 하던 중 일촉즉발의 긴장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 밖에 ‘검은 황금’으로 불리는 망간단괴 이야기, 프랑스 주관으로 2004년 다국적 과학자들이 참가한 심해 환경탐사 ‘노디너트(NODINAUT)’ 등도 이 책은 빼놓지 않는다. 독일은 수년 전 북동태평양 심해저에서 망간단괴를 개발하기 위해 국제해저기구에서 탐사권을 취득하였다. 우리나라도 이미 2002년 북동태평양 공해상에 7만5000km²의 단독개발 광구를 확보했다. 우리나라 면적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해외 영토가 생긴 셈이다. 노디너트의 경우 나도 이 탐사에 참가하였기에 책을 읽으며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 내가 관여하고 있는 국제해저기구(ISA)와 국제해양광물협회(IMMS) 이야기도 들어 있어 다 읽을 때까지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분에게는 당시 ‘노틸’호를 타고 수심 5000m가 넘는 태평양 바닥을 탐사하고 쓴 책 ‘바다에 오르다’를 권한다. ‘심해전쟁’에 등장하는 많은 과학자들의 선상 생활을 엿볼 수 있다.

해양과학자로서 외국인이 우리나라 해양과학기술 수준을 높이 본 것이 내심 뿌듯하였다. 정부가 일찍이 심해 자원의 중요성을 헤아리고, 한국해양연구원이 오랫동안 망망대해에서 심해 탐사를 해오는 과정에서 우수한 해양과학자를 양성하며 심해탐사 기술을 발전시킨 결과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해양과학기술이 이제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뜻이지, 우리가 세계의 해양과학기술을 선도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해양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가야 할 길은 심해의 깊은 물속만큼이나 멀다. 저만치 앞서 달려가는 나라들이 아직 많다.

김웅서 한국해양연구원 선임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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