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의 삭막한 공장 건물이 동화 속 세계 같은 알록달록한 벽화로 옷을 갈아입었다. 생산동(棟)과 포장동을 잇는 기다란 파이프는 고양이의 코처럼 변신했고, 공장 굴뚝과 곳곳의 문들은 콩을 다양한 표정의 아이콘으로 변주한 깜찍한 이미지로 채워졌다. 올해 창립 65주년을 맞는 샘표(대표이사 박진선)가 기획한 색다른 공공미술프로젝트 덕분이다.
이 회사는 ‘아트 팩토리 프로젝트’란 제목 아래 경기 이천시 호법면의 간장 공장 건물 4개동을 신진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스며든 대형 예술작품의 무대로 제공하고 19일 이를 공개하는 행사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박진선 대표는 “지금까지 공장이라고 하면 모든 초점이 제품에 맞춰져 있을 뿐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감성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며 “직원들이 출퇴근하면서 자신이 일하는 공간을 보다 흥미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구상한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원래 3년에 한 번씩 건물의 부식 등을 막기 위해 외벽을 회색으로 칠했지만 이번에는 직원 120여 명과 지역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을 위해 특별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는 것이다.
생산시설을 작품화하기 위해 그리마, 나광호, 이우리, 정지윤, 정영구, 김태윤 씨 등 작가 6명이 참여했다. 그리마는 곡물저장탱크를 원색으로 칠하고, 곳곳에 간장의 재료가 되는 콩을 그려넣었고, 생산동을 맡은 이우리 작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테마로 창의력을 펼쳤다. 낙서와 어린이의 스케치를 소재로 한 나광호 씨, 십장생도를 재해석한 벽화를 그린 정지윤 씨와 함께 정영구, 김태윤 씨는 사진과 영상작품으로 참여했다. 이우리 씨는 “내 그림을 보고 행복감을 느낀 직원들이 그 마음을 담아 행복하게 일하는 상상을 하면서 즐겁게 작업했다”고 말했다.
벽화 프로젝트 외에도 이 회사는 2004년부터 이천공장에 ‘샘표 스페이스’란 전시공간을 운영해 왔다. 박 대표는 “외진 곳에 있어 전시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는 직원들에게 예술을 일상적으로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며 “갤러리와 달리 점심시간에 개막행사를 마련해 직원들이 식사한 뒤 작가들과 소통할 기회를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곳에선 벽화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D-팩토리’전이 9월 16일까지 이어진다. 오경환 공장장은 “직원들이 처음 접하는 현대미술을 낯설고 난해하게만 생각했는데 매번 전시를 보면서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차츰 바뀌었다”며 자랑했다.
우중충했던 공장이 꿈과 이야기가 흐르는 환상의 세계처럼 밝고 환해졌다. 벽화를 둘러본 조병돈 이천시장이 말했다. “이천에 700여 개 공장이 있는데 다른 공장에도 이런 프로젝트가 퍼져나가 이천이 미술로 유명한 도시가 되면 참 좋겠다.” www.sempiospac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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