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三達尊(삼달존) 가운데 爵(작)을 얻어 가진 사람이 齒(치)와 德(덕)을 지닌 사람을 무시하고 홀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서 맹자는 정치에서 壯大(장대)한 일을 하려고 하는 군주라면 반드시 德과 道를 지닌 인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將大有爲之君은 장차 크게 할 바가 있는 군주, 즉 장차 훌륭한 일을 크게 할 군주라는 뜻이다. 所不召之臣은 부를 수 없는 바의 신하, 즉 군주가 오라고 명령할 수 없는 훌륭한 신하라는 뜻이다. 欲有謀焉은 ‘그와 상의할 바가 있으면’이다. 焉(언)은 지시사의 기능을 지닌다. 就之는 나의 쪽에서 그리로 간다는 말이다. 곧 장차 크게 할 바가 있는 군주가 자신이 오라고 명령할 수 없는 신하 쪽으로 간다는 뜻이다. 尊德樂道는 덕을 존중하고 도를 즐거워함이니, 덕 있는 사람을 존중하고 도를 지닌 사람과 함께 하기를 즐겁게 여긴다는 말이다. 不足與有爲는 그런 군주와는 훌륭한 일을 함께 행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재야에 있으면서 학문을 하고 덕행을 실천하는 사람을 遺逸(유일)로 徵召(징소)하고, 때로는 특별히 덕망과 학식이 높은 분에게 祭酒(좨주)의 직함을 주어 극진히 우대했다. 징소란 재야에 있는 사람을 禮를 갖추어 불러서 벼슬을 내리는 일을 말한다. 조선후기에는 재야의 훌륭한 사람을 山林處士(산림처사)라 불렀다. 한편 좨주는 成均館(성균관)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종3품의 관직인 司成(사성)을 그렇게 부르기도 했지만, 효종 때는 별도의 특별 관직을 두었다. ‘제주’라 읽지 않는다. 遺逸로 징소되고 祭酒가 된 분들이 곧 ‘군주가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신하’였다. 옛날의 훌륭한 분들은 군주와 더불어 장차 크게 장대한 일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군주가 禮를 다하여 지극히 공경해야 조정에 나아갔다. 오늘날 고위직에 임용될 예정자들이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면, 이 시대에는 위정자가 함부로 부르지 못할 인사가 정말로 없는 것인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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