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펴낸 시오노 나나미 e메일 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4일 03시 00분


“기독교-이슬람 충돌은 현재진행형”

유럽의 고대와 중세를 자신의 일기장처럼 불러내는 선 굵은 작가 시오노 나나미(74·사진). 역사와 소설의 경계를 종횡무진 누벼온 그가 이번에는 ‘십자군 전쟁’을 자신과 독자의 책상 앞에 불러냈다. 7월 7일 출간된 ‘십자군 이야기’(문학동네) 1권은 한 시대를 수놓은 용장들의 박진감 넘치는 전투와 함께 다양한 개성을 지닌 제후와 장군들의 섬세한 심리까지 복원해내면서 독자들로부터 ‘역시 시오노’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책은 출간된 지 3주 만에 베스트셀러 4위에 올랐고 이후 쭉 10위권 이내를 유지하고 있다(한국출판인회의 자료).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작가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새로운 책 주제로 십자군을 선택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프랑스 왕 루이 9세가 이끈 제7차 십자군 원정을 1940년대에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그림.문학동네 제공
프랑스 왕 루이 9세가 이끈 제7차 십자군 원정을 1940년대에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그림.문학동네 제공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후 19세기 초까지 2300년의 역사를 지중해 중심으로 조망해 글을 써왔다. 북유럽 기독교 세계와 중근동(中近東) 이슬람 세계가 격돌한 십자군 전쟁을 다룬 것도 그 일환이다. 이 작품 후 이어질 다른 작품까지 완성되면 나 자신의 손으로 쓴 서양사가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십자군 이야기’가 지나치게 유럽인의 시선으로 쓰였다는 의견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십자군 관련 사료는 유럽 쪽에 압도적으로 많다. 이슬람은 자신이 우세한 시기에 대한 기록은 남겨도 열세였던 기록은 남기지 않았다. 반대로 유럽 쪽은 패배했을 때도 정확하고 상세한 기록을 남겼는데 베네치아공화국이 그 전형이다.”

한국 독자 가운데선 그의 저작이 주관적이고 과감하다며 좋아하지 않는 이도 적지 않다. 특히 지나치게 보수적 우파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그에게 바람직한 역사 서술 방식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우선 ‘역사 사실’과 ‘역사 인식’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한일합병, 즉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는 엄연한 ‘역사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인식’ 내지 해석은 일본과 한국이 차이를 보인다. 그게 당연하다. 개인적으로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들이 모여 공동으로 집필하는 방식을 찬성하지 않는다. 그보다 ‘역사 사실’에 대해 한국 측과 일본 측이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역사 인식’에 기초한 저서를 쓰고, 그것을 서로의 언어로 번역해 상대방 국가에서 출판하면 어떨까. 내 책 역시 ‘역사 사실’과 ‘역사 인식’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 해석해 주면 좋겠다.”

―십자군 전쟁이 상징하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충돌은 현재진행형이다. 십자군 전쟁이라는 주제가 현 시점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일본에서 책을 내며 붙인 작가의 말에 ‘지금 세계 정세의 상당 부분은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의 대결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지만 영향을 피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항쟁을 해결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를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 안에는 전쟁만 있는 게 아니다. 200년에 걸친 십자군 역사에서 여러 차례 시도됐던 화해, 혹은 공생을 위한 노력, 그것이 실패한 원인도 쓰여 있다.”

―로마인 이야기를 비롯해 이번 작품까지 지나치게 영웅주의 엘리트주의의 관점에서 서술됐다는 비판이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한 무렵부터 내가 그려내는 남성들이 영웅주의, 엘리트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그들을 지지한다. 이유가 뭘까. 누구나 본능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통치자가 무능하면 통치를 받는 자신들까지 해를 입고, 반대로 뛰어난 지도자가 있다면 일반 시민들까지 혜택을 누린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집필하는 건 어떤 기분인지….

“나는 지중해에서 바라본 유럽 역사를 글쓰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중해의 중심에 튀어나온 반도다. 이탈리아에서 산다는 것은 지중해 세계를 살았던 사람들을 가까이 느끼기에 좋은 조건이다. 누가 뭐래도 태양은 옛날과 마찬가지로 그리스 쪽에서 떠올라 스페인 쪽으로 지고, 여름에는 여전히 서풍(제피로스)이 분다. 그리고 빛과 그림자도 옛날처럼 명확한, 북유럽과 다른 지중해 세계의 것이니까.”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뜨거운 필력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 시오노 나나미에게 저술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젊었을 때 살기 위해 공부하고, 생각하고, 글을 썼다. 하지만 지금은 공부하고 생각하고 글을 쓰기 위해 살아가는 것 같다”고 했다.

“무엇보다 죽기 전에 꼭 그려내고 싶은 남자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누구인지는 다음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최근 내 심경은 노년에 들어선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다. 잘 보낸 하루 후에 편안한 잠이 찾아오듯, 잘 보낸 삶 후에는 차분한 죽음이 찾아온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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