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꽃과의 대화]옥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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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7일 03시 00분


낮에 잠자다 밤에 활짝 웃는 ‘옥비녀 미인’

밤이 되자 활짝 피기 시작하는 옥잠화 꽃. 낮에는 꽃이 납작하게 오므리고 있어 꽃향기도 거의 나지 않는다. 서정남 연구사 제공
밤이 되자 활짝 피기 시작하는 옥잠화 꽃. 낮에는 꽃이 납작하게 오므리고 있어 꽃향기도 거의 나지 않는다. 서정남 연구사 제공
8월 말이라 저녁나절엔 선선한 바람이 한여름 더위에 지친 우리 심신을 달래 준다. 이때가 되면 주변 공원에라도 가서 벤치에 앉아 다정한 사람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어진다. 그런데 어디선가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향기를 머금고 있다. 무엇일까? 무슨 향기가 이 늦여름 저녁 내 마음을 설레게 할까?

○ 저녁 무렵 풍기는 품격 있는 향기

나는 집사람과 연애할 때 과천의 현대미술관을 자주 찾았다. 특별히 미술관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변 경관이 참으로 호젓해 그녀와의 시간에 몰입하게 해줬기 때문이다.

나는 거기서 옥잠화의 참모습을 알게 됐다. 그날도 저녁 어스름에 우리가 자주 찾던 벤치에 앉았다. 즐거운 대화를 이어가던 중 상큼하면서도 약간의 달콤함이 묻어있는 향이 전해져 왔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어느 아가씨의 진한 향수 냄새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향기는 인공적인 것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상큼하고 품격이 있었다. 주변의 식물들을 살펴봤다. 드디어 내 앞에 나타난 것은 탐스러운 넓은 잎 가운데에 하얗게 피어 있는 옥잠화 무리였다.

그때까지 나는 옥잠화가 피어있는 사진을 찍은 적이 없었다. 항상 납작하게 찌그러져 있는 꽃을 보며 ‘언제쯤 활짝 핀 옥잠화 꽃을 찍을 수 있을까’란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그 저녁의 옥잠화 꽃은 한결같이 활짝 피어 있었다. ‘아! 옥잠화 꽃은 낮잠형 밤낮 여닫이 운동을 하는구나….’ 쉽게 말해 옥잠화 꽃 은 낮잠을 자고 밤에 피는 것이었다.

꽃잎의 주야간 여닫음(Nocturnal circadian rhythmic opening)은 매개곤충(꽃가루를 옮겨줌)의 활동시간에 최대한 향기를 발산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물은 온도나 빛의 양 등의 변화를 신호로 삼아 꽃잎을 여닫는다. 아쉽게도 옥잠화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다만 옥잠화 꽃이 여름철 비가 와서 서늘한 날이나 초가을에는 낮에도 계속 열려있는 것으로 볼 때, 주변 온도에 반응하는 듯하다.

○ 토종 비비추가 옥잠화 친척


옥잠화처럼 낮잠을 자고 밤에 활짝 피는 꽃으로는 야래향(夜來香)과 달맞이꽃이 있다. 열대 수련 중 일부도 밤에 꽃을 피운다. 연꽃이나 채송화 같은 대부분의 여름철 꽃들은 밤잠을 자고 낮에 꽃을 피운다.

옥잠화는 꽃봉오리가 옥으로 만든 비녀(簪)와 같이 생겨서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굳이 번역하자면 옥비녀꽃이 되겠다. 이 식물의 원산지는 중국이지만 오래전에 우리나라에 도입돼 많이 심어지고 있다. 우리 토종인 비비추가 옥잠화의 친척에 해당한다. 꽃말은 ‘기다림, 아쉬움’이다.

옥잠화는 햇빛이 적당히 드는 반그늘을 좋아하므로 나무 그늘 밑에 많이 심는다. 풍성하고 싱그러운 잎이 매력적이며, 꽃은 8월부터 한 달가량 잇달아 핀다. 흰색의 옥잠화 꽃은 오후 4시경부터 꽃잎을 벌리는데, 밤에는 향기가 정말 좋다. 물을 좋아하므로 잎이 나오기 시작하는 메마른 봄철이나 한여름 건조기에는 저녁에 물을 충분히 줘야 한다. 봄철 잎이 나오기 전 유기질 비료로 살짝 덮어주면 성장이 좋아지고 꽃이 많이 핀다. 2년에 한 번 정도 포기를 나누어 번식시킨다.

서정남 농림수산식품부 국립종자원 연구사(농학박사) suhjn@seed.go.kr  
서정남 연구사
는 고려대 대학원(화훼원예학 전공)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일본학술진흥회에서 외국인특별연구원으로 3년 동안 일했다. 저서로 ‘원예와 함께하는 생활’ 등 14권이 있다. 고려대 단국대 상명대 등에서 생활원예 강의를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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