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디스코장 조명이 번쩍거리고, 신나는 댄스음악은 귀청 따갑게 울려퍼진다. 나이트클럽 아닌, 전시장에서 색다른 설치작품과 마주쳤다. 먼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에 선보인 양진우 씨의 설치작품 ‘장식된 기능’은 관객을 파티의 주인공으로 초청한다. 창고 속 잡동사니나 폐기된 물건으로 꾸민 멋진 무대. 관객이 둥근 발판 위에 서면 조명이 켜지고 흥겨운 시간이 시작된다. 버려진 것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면서 사회의 ‘가치매김’ 방식에 의구심을 드러낸 작품이다. 박재영 이미연 이병재 씨가 구성한 ‘파트타임 스위트’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아틀리에 에르메스의 한 방을 댄스클럽처럼 만들었다. 쿵쾅쿵쾅 사운드와 결합한 이들의 퍼포먼스 비디오는 언뜻 춤추는 듯 보여도 노동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노동이 유희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고단한 현실에서 역설적으로 가능성을 찾으려는 시도다. 젊은 작가의 실험정신과 신선한 감성을 보여주는 전시를 만났다. 금호미술관이 국립현대미술관 창작스튜디오와 공동 기획한 ‘프로포즈 7’전(9월 18일까지·02-720-5114)과 에르메스가 주최하는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후보작가’ 전(10월 4일까지·02-544-7722). 때론 유머와 위트, 때로는 예리한 비판의식으로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는 전시들이다.》 ○ 뒤집어 생각하다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의 올해 후보들은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개성적 프로젝트로 풀어냈다. 최원준 씨는 존재하지만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익명의 장소를 사진으로 탐색한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숱한 희생을 치르고 건설됐으나 지금은 버려진 터널처럼 개발지상주의와 군사문화가 만든 현장을 기록한 사진, 다큐와 허구를 접목한 ‘모큐멘터리(mockumentary)’ 영상은 사회가 주입한 우상에 반기를 들고 있다.
관습화된 관념을 훨씬 경쾌하게 뒤집는 작업도 있다. 파트타임스위트는 일일이 손으로 깎아 스티로폼 구조물을 세우고, 자신들의 땀이 담긴 수공예 작품의 안팎을 뒤집어 노동의 흔적을 겉으로 드러낸다. 산을 주제로 작업해온 김상돈 씨는 ‘고상하고도 저속한 욕망이 식별 불가능하게 혼재하는’ 현실을 비디오, 조각, 사진 등 확장된 영역으로 펼쳐낸다. 대걸레로 만든 삼족오상, 신발 깔창으로 만든 화분 같은 재미난 조각, 산에 불시착한 우주선처럼 보이는 모기장 텐트 사진 등이 관객을 낯설고 이질적인 세계로 초대한다. ○ 거꾸로 바라보다
금호미술관 1층에는 최종하 씨가 나무로 만든 수동장치들이 자리한다. 디지털 기기인 MP3플레이어를 아날로그식으로 작동시키는 구형 카세트, 주인이 원하는 대로 빠르거나 느리게 가는 시계, 작은 선풍기로 큰 바람을 만드는 장치는 명랑한 웃음을 선사한다. 일상의 사소한 욕구나 몽상을 돈키호테식 엉뚱한 발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현대식 건물의 한 부분을 촬영한 건축사진(김도균), 물웅덩이에 비친 도시풍경을 담은 빗물 사진(이예린)은 차가운 추상과 감성적 이미지로 대비된다. 합성수지 점토로 만든 유연한 조각(이지숙), 인공과 자연의 재료를 재조합한 설치작품(양주희), 그림일기 같은 드로잉(차영석)도 독특하다.
이 전시는 미술평론이 아니라 여행, 건축, 디자인, 패션 등 테마별 현장전문가들이 선정한 작가 7명이 참여했다. 새로운 미술언어에 대한 도전, 세상과 소통하는 발랄한 상상력이 즐거운 감상을 제안하는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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