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대 그 양반은 딱 사진 한 장을 보냈어. 손바닥 반만 한 희미한 사진을 보고 그렸지. 마르고 날카롭게 얼굴을 그렸는데 얼마 전 봤더니 실물이 퉁퉁해. 사진과 생판 다르더라고. 얼토당토않게 그린 셈이 됐어. 허허.”
30년 넘게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표지에 들어가는 시인 캐리커처를 그려온 이제하 씨. 그가 그린 시인의 얼굴만 150여 작품에 이른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시인이자 소설가 겸 화가인 이제하 씨(74)는 겸연쩍어했다. 시인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가끔 엉뚱한 그림도 나오기 때문이다.
“지내다 보면 얌체 같은 시인들도 있어. 그렇다고 해서 부정적이거나 추하게 그리지는 않지.”
문학과지성사(문지)가 펴내는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이 이달 말 제400호를 맞는다. 1977년 황동규 시인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를 시작으로 34년 만에 달성한 문단의 한 이정표다. 문지 시선 시작부터 이 씨는 시인이자 화가인 김영태(1936∼2007)와 함께 시선집의 트레이드마크인 시인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왔다. 30년 넘게 이 씨가 그려온 캐리커처는 150여 작품에 달한다. 지난달 30일 이 씨가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카페 ‘마리안느’에서 그를 만났다.
“오규원이가 자신이 운영하던 문장사에서 김춘수 전집을 낼 때 캐리커처를 넣어 반응이 좋았지. 그래서 문지도 캐리커처를 넣자고 했어. 그런데 일반 화가들에게 그려달라고 하면 화료(畵料)를 엄청 달라고 하니까 미술대(홍익대) 나오고 문인들하고 친했던 김영태와 내가 그리게 된 거지.”
그는 문지 시선 초기부터 달력의 뒷면을 캔버스 삼아 캐리커처를 그려왔다. 코팅이 된 종이라 펜촉이 쓱쓱 잘 나간다고 한다. 작품이 완성되면 출판사에 우편으로 보낸다. “김수영이 담배 은박지 뒷면에 시를 썼는데 나는 달력 뒷면에 캐리커처를 그린 셈”이라며 그는 웃었다. 파지가 많이 나오는 데 비해 화료(초기에는 작품당 10만 원을 받다가 점차 올라 3년 전부터 40만 원을 받는다고 했다)가 적은 것도 달력을 택한 이유 중 하나다.
“나는 담뱃값이나 벌까 하고 소일거리로 해왔는데 김영태는 정색을 하고 그렸지. 그 친구는 비싼 와트만지 같은 것을 썼어. 김영태는 완전히 기분파가 돼 가지고 자유롭게 그렸지만 나는 비교적 실물과 닮게 그리려고 했지.”
이 씨는 홍익대 조소과에 입학해 군 제대 후 서양화과로 옮겨 졸업했다. 동료 화가보다 김현(1941∼1990), 김병익 김치수 씨 등 문지 창립 멤버들과 가깝게 지냈다. 서울 중구 무교동의 ‘르네상스’, 명동의 ‘갈채’ 같은 음악다방이 그들의 아지트였다.
“김현이 사람이 무던하고 미학도 알고 해서 친했지. 문인들이 더 재미났어.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과묵하고 죽자 살자 그림 그리는 분위기여서 별로였어.”
그는 예전에는 안면이 있는 문인들도 많아 캐리커처 그리기 편했지만 점차 후배 시인들과 작품 세계를 알기가 힘들어 출판사에서 보내온 스냅 사진 몇 장을 보고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그리기 어려웠던 인물로는 김광규 이수명 장석남 씨를 꼽았다.
“내가 김광규 시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잘 그려지는 게 아니더군. 김광규의 시는 날카로운데 사실 얼굴은 시골 아저씨 같잖아. 그래서 그리기 까다로웠지. 이수명은 ‘아름다운’ 얼굴인데 가장 난처했지. 코하고 입하고 붙어있어 그리기 어려웠고 자칫하다가는 소녀처럼 될 것 같아 힘들었어. 장석남은 문단에서 미남이라고 하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 여하튼 동그랗고 쉬운 얼굴인데도 그리기 어렵더라고….”
이 씨는 400호대에서도 계속 시인들의 얼굴을 그린다. 내년 가을 무렵엔 문인들의 초상화전을 열 계획이다.
“2009년 대구에서 문인 초상화전을 열기는 했지만 그때는 황학주가 (개인 소장품으로) 갑자기 여는 바람에 아쉬웠어. 이번엔 제대로 한번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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