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키위의 원산지가 중국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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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3일 03시 00분


■ 中 쓰촨성 참다래 육종연구센터를 가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904년. 뉴질랜드 선교사 이사벨 프레이저는 중국 창장(長江·양쯔강) 유역의 한 야산에서 우연히 모양이 예쁘고 향도 독특한 열매를 발견했다. 그녀는 열매의 씨를 모아가지고 귀국했다. 열매의 모양이 서양까치밥나무 열매(구스베리)와 비슷하다고 해 ‘차이니스 구스베리’란 이름을 붙였다.

한동안 차이니스 구스베리는 정원에 그늘을 만드는 용도로 사용됐다. 하지만 뉴질랜드의 원예학자 헤이워드 라이트는 그 열매의 ‘맛’에 주목했다. 그리고 10년 넘게 품종을 개량한 끝에 마침내 크기가 크고 당도도 높은 개량 과일을 손에 넣었다. 이후 뉴질랜드 사람들은 녹색 속살의 그 과일에 ‘키위프루트’란 새 이름을 붙였다. 자기들 나라를 상징하는 국조(國鳥) 키위와 닮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1950년대를 기점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수출에 나섰다. 지금은 뉴질랜드하면 참다래(키위의 국내 명칭)가 떠오를 만큼 참다래는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상품이 됐다. 프레이저가 중국에서 가져간 과일은 우리나라의 토종 야생 과일인 다래와 비슷한 종류였다.

○ 중국은 참다래의 천국

중국산 야생 다래의 개량을 계기로 뉴질랜드는 ‘사실상’ 참다래의 본고장이 됐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참다래의 원산지가 뉴질랜드인 줄 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참다래 주도권과 관련해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중국이 참다래 육종과 재배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참다래의 원래 고향인 중국은 엄청난 잠재력을 바탕으로 이제 자존심 회복에 나서고 있다.

O₂는 지난달 말 참다래의 고향인 중국 쓰촨(四川) 성을 찾았다. 한국참다래연합회 회원 50여 명, 국내 참다래의 최고 권위자 박동만 교수(경남농업마이스터대학 참다래 전공) 등과 함께였다.

쓰촨 성 자연자원연구소 육종연구센터의 리밍장 박사는 중국 참다래 연구의 권위자다. 그가 한국에서 온 참다래연합회 회원들에게 야생에서 수집한 참다래 품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세권 씨 제공
쓰촨 성 자연자원연구소 육종연구센터의 리밍장 박사는 중국 참다래 연구의 권위자다. 그가 한국에서 온 참다래연합회 회원들에게 야생에서 수집한 참다래 품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세권 씨 제공
쓰촨 성 참다래 재배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80년대 일본으로부터 뉴질랜드의 헤이워드(그린 참다래의 대표 품종)를 들여오면서 본격적인 재배가 시작됐다. 하지만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지금 쓰촨 성 참다래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됐다. 온난한 기후 조건과 비옥한 토양, 그리고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이 그 기반이다. 지난해 쓰촨 성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참다래 생산량은 대략 50만 t. 생산량에 기반을 둔 절대적인 수치로만 따지면 이미 전통 참다래 강국인 뉴질랜드와 이탈리아를 넘어섰다.

참다래 강국으로 올라선 중국의 최대 강점은 역시 무한한 자원이다.

쓰촨 성 지역의 최대 도시인 청두(成都)에서 차로 2시간가량 이동하면 총면적 15ha가 넘는 한 농장이 나온다. 쓰촨 성 자연자원연구소 육종연구센터가 운영하는 ‘실험농장’이다. 이 농장에선 매년 야생에서 1000가지가 넘는 새로운 참다래 종을 수집해 그중 우량 품종만 골라 기른다. 그렇게 기르는 품종이 매년 수십 가지에 이른다.

참다래는 품종 개량이 매우 어려운 과일로 꼽힌다. 뿌리가 약한 데다 과일 역시 여러 기후 조건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종간 교배를 통해 이로운 유전자를 가진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방법인 ‘육종’ 역시 어렵다. 박 교수는 “참다래 암나무와 수나무를 수만 번 교배하면 좋은 품종 하나를 얻을까 하는 수준”이라며 “보통 육종을 통해 좋은 품종 하나를 얻는 데 15년 이상이 걸린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야생 참다래는 4가지밖에 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른 나라로선 중국이 마냥 부러울 수밖에 없다. 쓰촨 성 육종연구센터를 방문한 한 뉴질랜드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나라가 육종에 엄청난 연구비용을 쏟아 부을 때 중국은 야생종을 기반으로 매년 수십 가지 우량 품종을 만들어내고 있다. 중국은 말 그대로 참다래의 천국이다.”

○ ‘품종 전쟁’은 총성 없는 전쟁

사실 10, 20년 전만 해도 중국의 야생 참다래 자원은 전 세계의 자원이었다. 각국의 연구원들은 중국에 건너가 어렵지 않게 참다래 종자와 가지를 가져와 육종 연구를 했다.

하지만 최근엔 그런 것이 어렵게 됐다. 얼마 전 대대적인 참다래 육성 계획을 발표한 중국 정부가 보호 정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2005년을 기점으로 세계적으로 강화된 참다래 품종 보호법 역시 이러한 기류에 한몫했다. 최근 참다래를 생산하는 국가 간 품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국은 자국 품종 보호에 더욱 집중하는 분위기다. 쓰촨 성 육종연구센터의 수석연구원 리밍장(李名章) 박사는 “중국은 그동안 손해 보는 장사를 많이 했다. 하지만 앞으로 개발되는 품종과 관련해선 다를 것”이라고 했다. 그는 “뉴질랜드의 제스프리골드(골드 참다래의 한 품종)의 경우 판매 수익의 20%가량을 로열티로 받는다고 알고 있다”면서 “중국 역시 품종 보호에 대한 체계적인 원칙을 세워 다른 국가에서 우리 품종을 재배하거나 그 품종을 토대로 새로운 품종을 만들 경우 원칙대로 로열티를 받을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우수한 야생 종자를 바탕으로 이미 여러 종류의 참다래를 만들어냈다. 길쭉한 모양이 특징인 진타오는 1981년 장시(江西) 성의 한 계곡에서 발견된 야생 참다래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뉴질랜드의 헤이워드보다 수확 시 당도가 2배 정도 높다. 2000년대 초부터 분양에 들어가 현재 이탈리아와 칠레, 아르헨티나, 미국 등지에서 재배 중이다. 중국은 현재 특히 레드 참다래(과실의 가운데 씨 부분이 붉은색인 참다래)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레드 참다래는 기존 품종보다 당도가 높고 비타민C가 풍부하다.

한편 우리나라는 야생 종자 자원이 부족하긴 하지만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재배와 육종 기술을 갖고 있다. 김기태 한국참다래연합회 회장은 “최근 국내에서도 해금, 제시골드, 한라골드 등의 품종을 육종으로 개발해 세계적으로 그 기술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고 설명했다.

김창효 제주참다래 영농조합법인 회장은 “중국은 아직 관개시설, 저장시설, 냉장시설 등 기술력에서 우리보다 한 수 아래”라며 “우리의 앞선 기술력을 중국 신품종과 맞바꾸는 협약을 경쟁국보다 먼저 맺어 레드 참다래 등 전망성 좋은 품종들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두=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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