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 한줄]음악에 관한 유일한 슬픔은 꺼야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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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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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전생에 사람이 아니라 음악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은 그때 나를 작곡한 그 남자다… 나는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전생을 거듭 살고 있는 것이며… 서서히 음악이 되어가는 것이다”

-김경주,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중 ‘비정성시’에서
또 아침이 왔다. 노동의 대가로 먹고사는 모든 지구인의 지리멸렬한 숙명이 기다리고 있다. 출근. 졸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야비하게 습격해오는 갖은 무기력들과 싸우며 준비를 마친다. 전투태세를 갖추며 헤드셋을 쓰고, 거리에 발을 내딛는 동시에 볼륨을 키운다. 나는 주로 록을 듣는다. 영국의 록밴드 ‘뮤즈’는 밴드 이름에 값하는 영감 넘치는 곡들을 만들어낸다. 진군을 앞둔 군인들의 발 구름소리처럼 힘찬 드럼, 낮고 묵직한 베이스, 섬세하고 현란한 일렉 선율, 세상만사 거리낄 것 없다는 듯 내지르는 보컬의 목소리.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강렬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고함치고 싶지만 남들 이목이 신경 쓰여 차마 그러지 못하는 소심한 한국 팬을 위해 그들이 아침부터 고래고래 난리를 쳐준다. 이들과 함께라면 출근길 꽉 막힌 도로의 신경질적인 클랙슨 소리에도 개의치 않을 수 있고, 만원 지하철 한 귀퉁이에 폐지처럼 찌그러져 있어도 문제 될 게 없다. 음악은 때때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물리적인 공간을 초월한 새로운 세계를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아플 때 진통제를 먹는 것처럼, 현재를 견디기 어려울 때 음악을 처방받아야 하는 순간이 있다. 태양계를 벗어나고 싶을 만큼 막심한 스트레스가 쌓일 때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응급처치는 고막이 떨어질 만큼 큰 소리로 음악을 듣는 것이다. 헤드셋을 사용하면 누구에게도 민폐를 끼치지 않고 효과적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떠한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도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 몽롱한 약 기운이 퍼지면서 극심하던 통증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처럼, 온갖 것들로 무참히 짓이겨져 있던 마음이 음악에 맞춰 차분히 가라앉는다. 음악은 혈관을 타고 ‘내 몸의 내륙’을 자유롭게 유영한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음악이 있을 것이다. 김경주 시인이 읊었듯 ‘나는 전생에 이들이 작곡했던 노래였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드는 음악. 꽉 막혀 곪아가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눈물겹게 치유해주는 음악, ‘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게끔 하는 음악. 노래를 소리 내 따라 부를 수 있다면 효과는 몇 배로 늘어난다. 거리에서 무작정 노래를 부르다 보면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소지가 다분하지만, 큰 도로 옆을 걸으며 부르면 각종 소음에 노랫소리가 묻히는 효과가 있어 안심해도 좋다.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는 못해도, 길에서 노래 정도는 흥얼거릴 수 있는 일 아닌가. 이 방법의 장점은 가수와 내가 협연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퇴근길에 시도할 경우엔 술주정 아니냐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술에 취하지 않은 채 술에 취한 것처럼 노래 부를 수 있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시도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다.

음악에 관한 우리의 유일한 슬픔은 언젠가 그것을 꺼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뿐이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일을 시작하기 위해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는 음악을 끄고 헤드셋을 벗어야 하는 불가피한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할 수 있는 한 유예하고 싶은 순간이다. 그때 맞닥뜨리게 되는 건 일상의 잔소음들뿐이기 때문이다. 흡사 대기권을 이탈해 유영하다 삽시간에 머리채를 낚아 채여 지상으로 끌려 내려온 기분이다. 부스럭거리는 종이, 휴대전화 진동음, 삐걱거리는 의자, 얕은 숨소리,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내가 사는 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새삼스레 일러주는 완연한 현실세계. 오늘도 별 수 없이 헤드셋을 벗고 자리에 앉으며 드는 내 의문은 딱 하나뿐이다. 사람들은 배경음악이 없는 이창동 감독의 불과 두 시간 남짓한 영화가 지루하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정작 아무런 배경음악 없이 24시간 상영되는 이 하루는 어떻게 견디고 있는 것일까.

톨이 appena@naver.com  

톨이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Humor, Fantasy, Humanism을 모토로 사는 낭만주의자. 서사적인 동시에 서정적인 부류. 불안정한 모험과 지루한 안정감 사이에서 줄다리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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