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平陸(평륙)의 大夫 孔距心(공거심)과 대화하면서, 흉년에 고을 백성들이 餓死(아사)하고 離散(이산)하는 자가 많은 것은 대부가 직분을 수행하지 않는 탓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때 공거심은 그것이 왕의 失政(실정)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그러자 맹자는 다시 남의 소와 양을 맡아서 길러주는 사람의 예를 비유로 들어, 대부가 왕의 백성을 맡아 기르면서 제대로 보살펴 기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했다. 마침내 공거심은, 고을 백성들이 아사하고 이산하는데도 구제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是認(시인)했다.
今有∼ 이하는 假設(가설)의 말이다. 爲之牧之에서 위의 之는 소와 양을 맡긴 人을 가리키고 아래의 之는 牛羊을 가리킨다. 爲之는 ‘그 소와 양을 위해서’이다. 牧與芻는 牧場(목장)과 꼴이다. 反諸其人에서 諸(저)는 之於의 줄임말이다. ‘A乎? 抑B與?’는 ‘A인가? 아니면 B인가?’라고 묻는 선택의문문이다. 그런데 亦자를 사용함으로써, B는 질문자가 보기에 부정적이라는 판단을 은근히 드러냈다. 距心은 공거심이 자기 이름을 1인칭으로 든 것이다.
距心之罪라 하면 목민관이 직분을 수행하지 못하는 죄를 가리킨다. 한편 范滂之志(범방지지)라 하면 나라의 정치를 혁신하려는 의지를 말한다. 후한 환제 때 범방은 淸詔使(청조사)로서 冀州(기주)를 다스리러 나갈 때 고삐를 잡으면서 벌써 천하를 맑게 할 뜻을 품었다고 한다. 攬비之志(남비지지)라고도 한다. 鄭澈(정철)은 전라감사로 있을 때 ‘陳弊疏(진폐소)’를 올려, ‘지혜롭다는 자는 時勢(시세)를 살피고 어리석은 자는 尋常(심상)에 안주함으로써, 按擦(안찰·지방의 사정을 조사하고 백성을 어루만져 구제함)하는 자는 범방의 뜻이 없고 字牧(자목·고을의 백성을 사랑으로 돌보아 다스림)하는 자는 거심의 죄를 모릅니다’라고 개탄했다. 이 비판은 서글프게도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