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78>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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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8일 03시 00분


계절 관계없이 명절때마다 먹던 민족 고유의 떡

‘송편은 전통적인 추석음식이다.’ 현대를 사는 한국인은 이 명제가 너무나 당연해 보이기 때문에 의문조차 품지 않는다. 그런데 송편이 과연 전통 추석음식이었을까.

물론 예전에도 추석에 송편을 먹었다. 하지만 세월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송편은 추석보다는 주로 다른 명절에 먹었다. 추석 전통음식이라는 우리 상식과 다르다.

추석날 송편을 먹는다는 기록은 대부분 근대 문헌에 보인다. 조선 후기인 1849년에 나온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추석 때면 햇벼로 만든 햅쌀 송편을 먹는다고 했다. 1925년에 발간된 ‘해동죽지(海東竹枝)’에도 추석이면 새 쌀로 송편을 빚는다고 적었다. 그리고 한자로는 그냥 송편이 아니라 햅쌀 송편이라는 뜻에서 신송병(新松餠)이라고 표기해 놓았다.

추석 때 먹는 송편은 정확하게 말하면 ‘오려 송편’이다. ‘오려’는 올벼(조도·早稻)의 옛말로 제철보다 일찍 여무는 벼를 말한다. 즉, 오려 송편은 일찍 수확한 벼를 빻은 햅쌀로 빚은 송편을 뜻한다. 뒤집어 말하면 송편은 다른 명절에도 먹는 떡이지만 특별히 추석에는 오려 송편을 빚는다는 뜻이 된다.

이보다 옛날 문헌에는 추석이 아닌 다른 명절에 송편을 만든다는 기록이 더 많다. 19세기 초반의 문인 조수삼은 ‘추재집(秋齋集)’에서 정월 대보름날 솔잎으로 찐 송편을 놓고 차례를 지낸다고 했다. 19세기 중반의 한양 풍속을 적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도 2월 초하룻날 떡을 하는데 콩으로 소를 넣고 솔잎을 겹겹이 쌓아 시루에 쪄서 농사일을 준비하는 노비에게 먹이니 바로 노비 송편이라고 했다. 동국세시기 역시 추석 때보다는 2월 초하룻날 먹는 송편을 더 자세히 기록했다.

한편 광해군 때 팔도의 맛있는 음식을 기록한 허균은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 송편을 봄에 먹는 떡이라고 적었다. 봄에 쑥떡, 송편, 느티떡, 진달래화전 등을 먹는다는 것이다. 반면 추석이 있는 가을에 송편을 먹는다는 이야기는 없다. 정약용도 봄에 송편을 빚는다는 시를 지었다.

영조 때 문인 이의현은 세시음식으로 정월에는 떡국, 대보름에는 약식을 먹으며 삼짇날에 송편을 먹는다고 했고, 인조 때 이식은 ‘택당집(澤堂集)’에서 초파일에 송편을 준비한다고 적었다. 조선시대 관혼상제의 의식을 기록한 ‘사례의(四禮儀)’에도 단오에 시루떡이나 송편을 만든다고 했으며 6월 유두절에 송편을 빚는다는 기록도 있다.

이를 보면 송편은 특별히 추석 때만 만드는 떡이 아니라 정월부터 6월까지 명절을 비롯해 특별한 날이면 빚었던 음식이다. 그러니 송편 만드는 재료도 계절에 따라 다양했다. 1931년 9월 22일자 동아일보에는 ‘송편은 아무 곡식이든지 가루로 만들 수 있으면 빚었다’고 나온다. 조, 수수, 옥수수, 감자, 도토리도 재료로 쓰인다고 나와 있다. 또 물에 불린 쌀을 맷돌에 간 후 체에 밭쳐 가라앉힌 앙금으로 만드는 무리 송편, 보리쌀로 빚는 보리 송편 등을 소개했다.

그러니 송편은 계절에 관계없이 명절을 비롯한 특별한 날에 빚어 먹었던 우리 민족 고유의 떡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음력으로 8월 15일인 추석 때는 햇곡식이 나올 때니 이날 먹는 송편은 특별히 햅쌀로 빚었기 때문에 오려 송편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다른 명절은 의미가 퇴색됐다. 그래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송편이 특별히 추석 때 먹는 떡으로만 남게 된 것이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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