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79>토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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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9일 03시 00분


땅에서 나오는 계란… 소화 잘돼 추석과 찰떡궁합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추석을 대표하는 음식은 아무래도 송편과 토란이다. 다산 정약용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가 쓴 농가월령가 8월령에도 “북어쾌 젓조기로 추석명절 쇠어보세/신도주, 올벼송편, 박나물, 토란국을/산사에 제물 하고 이웃집과 나누어 먹세”라고 했으니 추석이 되면 토란국을 끓이는 것은 우리의 오랜 전통이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토란을 즐겨 먹었는데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은 토란을 극찬하는 글을 남겼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말을 원용해 “우유로 만든다는 하늘나라의 수타(소타)라는 음식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땅 위에서는 이보다 맛있는 음식이 없을 것”이라고 노래했다.

소동파의 시에는 “향기는 용연(龍涎)과 같은데 희기는 더욱 하얗고, 맛은 우유 같지만 맑기는 더 맑구나. 감히 남쪽의 농어회를 놓고 함부로 동파의 옥삼갱(玉삼羹)과 비교하지 말라”고 나온다.

한자 용어가 많으니 보충설명을 하자면 옥삼갱은 토란으로 끓이기도 하고 산마와 쌀을 섞어 죽처럼 끓이기도 하는데 미식가로 유명한 소동파 집안의 음식이다.

얼마나 향기가 좋은지 고대로부터 유명한 향료로, 용의 침으로 만들었다는 용연보다 향기가 좋고, 맛과 빛깔은 인도에서 전해졌다는 수타에 뒤지지 않으니 수양제가 먹고 감탄했다고는 하지만 송강의 농어회와는 비교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추석에 먹는 토란국을 놓고 과장이 너무 심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입맛이란 주관적이니 크게 탓할 수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토란이 맛도 좋지만 그 자체를 영양 덩어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순조 때의 학자인 김려는 ‘담정유고(:庭遺고)’에서 토란은 흙 토(土)에 알 란(卵)자를 쓰니 땅에서 나는 계란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한자로 토란의 영양가를 그만큼 높게 평가한 단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홍만선도 ‘산림경제(山林經濟)’에 옛날부터 전해지는 이야기를 소개하며 토란이 얼마나 좋은 식품인지를 설명했다.

어느 사찰에 이상한 중이 살고 있었는데 정성을 기울여 토란을 심으면서 해마다 많은 양을 수확했다. 그러고는 거둔 토란을 절구에 찧어서 벽돌을 만들어 담을 쌓으니 사람들이 모두 이상한 중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던 어느 해 심한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백성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이 절에 살던 40여 명의 중은 토란으로 만든 벽돌을 먹고는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고 그때서야 사람들이 그 중의 비범함을 알았다고 한다.

토란은 열대 아시아가 원산지로 인도를 거쳐 한국 중국 일본으로 퍼졌다. 우리나라에 언제 전해졌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고려 때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시골에서 토란국을 먹었다고 한 것을 보면 진작부터 재배한 것으로 보인다.

토란은 전분의 크기가 작아 소화가 잘되는 음식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토란은 성질이 평하며 위와 장을 잘 통하게 하는데 날것으로 먹으면 독이 있지만 익혀 먹으면 독이 없어지고 몸을 보한다고 했다. 민간요법에서도 토란은 주로 소화제로 이용했다고 하니까 동의보감에 나오는 내용과도 일치하는 셈이다. 추석이면 과식으로 배탈이 나기 쉬운데 소화를 돕는다니 과학적으로도 추석과 토란은 궁합이 맞는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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