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볼 책인데, 사람들이 담배 피우고 화를 내고 도박하는 모습을 그려도 되나’ 하는 고민도 있었어요. 하지만 본질은 말과 아이의 교감이었기에 큰 문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조은영)
“여백이 많은 작품이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요. 수묵화 기법으로 편안하게 그렸더니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제 아들도 오랫동안 빤히 쳐다보던걸요.”(유주연)
그림책 작가 조은영(31), 유주연 씨(29)는 해맑은 여고생들 같았다. 추석 연휴 직전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두 작가는 시종일관 까르르 웃으며 수줍어하다가도 자기의 그림책에 대해 설명할 때는 당당했다.
두 사람은 최근 라가치상, 안데르센상과 함께 세계 3대 그림책상으로 꼽히는 BIB(Biennial of Illustrations Bratislava)상에서 1등인 그랑프리와 2등인 황금사과상을 차지했다. BIB는 1967년부터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가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2년에 한 번씩 여는 그림책 축제로, 그랑프리 1명과 황금사과상 5명, 황금패상 5명을 선정한다. 올해는 44개국 356명의 작가가 원화 2318점을 출품했다.
조 씨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면서 그림책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출판사가 주문하는 그림을 주로 그렸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그는 문득 어릴 적 경마장에 놀러 갔던 일을 떠올렸다. 경마장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수십 컷 그렸고, 그림에 맞춰 이야기를 만들었다. 조 씨의 첫 작품이자 BIB상 그랑프리인 ‘달려 토토’는 이렇게 탄생했다.
동양화를 전공한 유 씨는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 그림책 작가가 됐다. 힘들게 작품을 그려 전시회를 열어도 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 역시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여러 컷 그린 다음 글로 엮었다. 유 씨의 첫 작품이자 BIB상 황금사과상 수상작인 ‘어느 날’은 다채로운 세상을 마음껏 경험하고픈 마음을 한 마리 새의 여행기에 담아냈다. 여백과 흑백의 묘미를 완성도 높게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 씨는 한 돌 된 아들이, 유 씨는 100일이 채 안 된 아들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아이가 어린이집에 갔을 때 내 책을 보며 ‘우리 엄마가 그린 그림책이야’라고 자랑할 수 있도록 좋은 작품을 많이 그리고 싶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어 작품에 매달리는 시간은 줄었지만 육아를 통해 얻게 될 온갖 경험과 감정이 그림책을 더욱 풍성하고 깊게 하지 않을까요.”
올 초 김희경 씨의 ‘마음의 집’이 한국 최초로 라가치상 대상을, 강경수 씨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시공주니어)가 우수상을 받은 데 이어 조 씨와 유 씨의 경사가 전해지자 국내 출판계는 ‘한국 그림책 역사상 최고의 쾌거’로 여기는 분위기다. 창비 어린이팀 김소영 팀장은 “미술 전공자를 포함해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는 그림책 작가들이 2000년대 중반 이후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특히 ‘억압’과 ‘검열’을 경험해보지 않은 젊은 작가들의 상상력은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조 씨는 “한국 그림책은 여전히 밝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우리 사회가 다양하듯 그림책 속 세상도 다양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한국지부(KBBY) 김세희 위원장은 “우리 작가들도 사회적 이슈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외국의 그림책을 선호하는 출판사의 경향을 지적하며 “우리 그림책의 수준은 높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맥을 못 춘다. 출판사가 당장의 이익이 줄더라도 국내 그림책 작가를 발굴해 키우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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