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그레 볼을 붉힌 단풍이 발아래 계곡까지 물들인 9월의 계곡 길을 걷다 보면 구국(救國)의 일념으로 천년을 기다려온 대장경이 있다. 23일부터 경남 합천군 가야면에서 개최되는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 축전’ 행사장과 해인사를 잇는 총길이 약 6km의 홍류동 계곡길이다. 이른바 ‘소리(蘇利)길’, 즉 이치를 생각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길이다. ‘마음 전하기’ ‘함께 가는 길’ ‘동화되기’ 등 맨발로 숲 속 나무다리를 걷거나 계곡에 발을 담그며 조용히 명상할 수 있는 열 가지 코스를 만들었다.
소리길에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면 비로소 천년 대장경을 마주볼 준비가 된 것이다. 약 12만 m²(3만6000여 평)의 넓은 터에 고려대장경의 제조과정 및 세계의 초조대장경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대장경 천년관’, ‘지식문명관’ 등 5개의 전시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주전시관은 대장경 천년관. 2층 높이의 360도 원형전시장을 비탈진 경사를 따라 올라가면 팔만대장경 동판에 새겨진 활자들이 살아있는 듯 사방에서 튀어나온다. 동판에 숨을 불어넣은 3D 래핑 영상과 홀로큐브 덕분. 홀로큐브는 가상 영상인 홀로그램을 터치할 수 있는 기술이다.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팔만대장경 진본도 이번 축전에서 만날 수 있다. 천년간 단 한 판의 뒤틀림도 허용하지 않았던 실물 목판 팔만대장경 2점을 ‘대장경 보존과학실’에 전시한다. 판자 켜기, 목판 다듬기, 경판 새기기 등 16년에 걸친 대장경 제작 과정은 ‘대장경 신비실’에서, 캄보디아와 미얀마에서 건조된 바나나 잎을 엮어 만든 ‘패엽(貝葉)경’과 스리랑카에서 만들어진 팔리어대장경 등 각국의 대장경은 ‘대장경 수장실’에서 볼 수 있다.
호위무사들이 삼엄하게 지키는 가운데 문무백관과 승려들이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정성스레 팔만대장경을 옮겼던 이운행렬도 이번 축전에서 재현된다. 매주 주말과 공휴일 오후 3시 반에 30분간 대장경의 행렬이 이어진다. 대장경 행렬뿐 아니라 108배의 행렬도 이어질 예정이다. 축전 홈페이지에 참가 신청을 하면 하루에 17명씩 개막일부터 108배를 해 45일 동안 팔만대장경의 판 수와 같은 8만1258배에 도전할 수 있다. 결과는 한국 기네스북에 기록된다. 055-211-6273. www.tripitaka201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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