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빛과 소금으로]<9>당진 동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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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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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센터… 무료학원… 아이들에겐 ‘천국 교회’

충남 당진의 동일교회는 신자들이 찾아오는 교회, 젊은 교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 교회는 급격한 사회 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 지역의 청소년을 위한 교육과 선교에 주력한다.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충남 당진의 동일교회는 신자들이 찾아오는 교회, 젊은 교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 교회는 급격한 사회 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 지역의 청소년을 위한 교육과 선교에 주력한다.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이수훈 담임목사
이수훈 담임목사
2년 전 여중생 A 양은 부모가 이혼하면서 충남 당진군에 있는 시골 할머니 집에 가게 됐다. 아버지는 알코올의존증 환자로 매일 폭력을 휘둘렀고 어머니는 정신이상이 됐다. 부모에게 버림 받은 소녀의 상처는 컸지만 할머니는 큰 위로가 되지 못했다.

달리기는 A 양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육상선수가 꿈이었던 그는 시골에서 매일 뛰고 또 뛰었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눈물과 분노, 답답함 때문에 숨이 찰 때까지 뛰었다. 그러다 비명과 함께 넘어졌고 다시 일어서려다 끊어질 듯한 통증에 주저앉았다. 그때까지 다리가 그냥 부은 줄로만 알았다.

농촌지역 청소년을 위한 사역으로 널리 알려진 충남 당진 동일교회(예장 고신 교단)의 이수훈 담임목사(55)가 절뚝절뚝 힘겹게 걷는 A 양을 처음 본 것은 몇 달 뒤였다. 이 목사는 당진군에만 부모의 이혼으로 버림받다시피 한 아이들이 150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학교를 찾아다니며 도울 방법을 모색하던 참이었다.

이 목사의 도움으로 병원에 간 결과 A 양의 다리는 부러져 있었고 곧바로 수술을 받아야 했다. 교회와 지역 로터리클럽이 나서 A 양 가족에게 새 집을 지어줬다. 입주 테이프를 끊는 순간 어머니는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A 양의 방을 더듬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지금 3학년이 된 A 양은 트럭운전사로 일하는 아버지와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동일교회는 다른 교회들처럼 아파트나 주택단지 등 사람이 많은 곳에 있지 않았다. 교회에 가까워지자 논밭이 나오더니 아예 산길로 들어섰다. 차 한 대가 겨우 갈 수 있는 외길을 따라 산속으로 800m가량 들어가자 큰 건물에 ‘예수촌’이라 새겨진 글씨가 보였다.

“절도 아닌데 산속에 있는 교회까지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한눈에도 웃음이 순박한 이 목사는 한 집 건너 십자가가 보이는 요즘 교회들을 보면서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를 세우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1996년 이곳의 시골 야산에 교회를 개척했다. 비닐하우스가 예배당, 동네 사람들이 귀신 나온다고 근처에도 가지 않는 폐가가 사택이었다. 처음 모인 주일(일요일) 헌금은 2000원.

청소년들이 교회가 운영하는 교육관에서 원어민 교사의 도움을 받으며 공부하고 있다. 동일교회 제공
청소년들이 교회가 운영하는 교육관에서 원어민 교사의 도움을 받으며 공부하고 있다. 동일교회 제공
주변의 상황은 매우 좋지 못했다. 농촌경제가 시들어가면서 노름과 빚,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가정도 적지 않았다. 이 목사는 산에서 캔 칡뿌리로 차를 만들어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물론 ‘바르게 살라’는 충고보다는 ‘네 아픔을 이해한다’는 위로가 우선이었다.

15년이 지난 요즘 이 산속 시골 교회 예배에는 당진뿐 아니라 서울과 천안 등에서 4000여 명이 찾아온다. 신자의 평균나이는 37세. 시골 교회에 젊은 신자들이 찾아오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이 교회가 처음으로 찾은 교회인 신자의 비율이 78%에 이른다. 교회가 사람들을 찾아다니지 않았지만 저절로 사람들이 찾아오는 교회로 자리 잡은 것.

교회는 산속에 있지만 교회가 운영하는 교육관은 읍내 아파트단지 상가에 있다. 이곳은 초등학생 150여 명이 방과 후에 찾아와 공부한다. 지역에서는 좁지 않은 공간임에도 언제나 아이들로 북적거린다. 원어민 교사와 피아노 바이올린 전공자 10여 명이 9년째 영어와 음악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원어민 교사 구경하기가 비교적 힘든 농촌에서 영어와 악기 연주를 배울 수 있어 1년 동안 대기하는 아이들까지 생겼다. 아이들은 식사비와 교재비만 내고 다른 비용은 교회에서 부담한다.

미국 보스턴대를 졸업한 뒤 이곳에서 아이들을 3년째 가르치고 있는 황세라 씨(25)는 “농촌지역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영어만이 아니다”라며 “마음에 상처가 있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어 큰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교회 근처에 있는 유치원과 중학생을 위한 교육관까지 합치면 교회는 400여 명의 아이들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부모의 아이들도 절반 가까이 된다.

7년 전부터는 가족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지역 아동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 50여 명이 이곳에서 생활한다. 자원봉사자 김기원 씨(46)는 “얼마 전 아이들과 용인의 한 놀이공원에 갔다가 아이들이 펑펑 우는 바람에 같이 울었다”며 “예전에 부모들과 함께 갔던 기억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가 크다고 해서 참 교회가 아닙니다. 앞으로 세상이 교회를 향해 ‘교회가 뭐냐’고 물어올 겁니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역할을 조용히 감당하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찾는 교회가 참 교회 아닐까요.”(이 목사)

당진=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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