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대째. 그는 뼛속부터 도공의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열일곱에 도공의 길로 접어들어 지금까지 53년 동안 경북 문경에서 묵묵히 흙을 굽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사기장(沙器匠) 보유자 김정옥 씨(70). 18세기 말 왕실 도자기를 만들었던 김비안의 손자다. 그의 아들이 도공의 길을 걷고 있고 손자가 경기 이천의 도예고에 다니고 있으니 사실상 9대째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도자기(사기) 전문가들은 “그처럼 조선 도예의 전통을 온몸으로 이어온 사람은 없다” “그는 발 물레의 달인이다. 하루 500∼600개의 찻사발(다완)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자리에서 거뜬히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신기에 가깝다”고 말한다.
김 씨가 10년 만에 서울에서 전시를 마련했다. 16∼22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갤러리7에서 열리는 ‘사기장 백산 김정옥 도력(陶歷) 60년 회고전’.
“어쩌면 저의 마지막 전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이번 전시는 질적인 면에서 최고 수준이 되도록 꾸몄습니다.”
자신의 도예인생을 모두 보여주고 싶다는 말이다. 이번 전시엔 대형 백자 항아리 20여 점과 다완 등 총 50여 점을 선보인다. 항아리는 백자 달항아리, 용 호랑이 물고기 포도 국화 모란 등이 장식된 백자철화 백자청화 분청사기 항아리 등으로 모두 45∼50cm 높이의 대작들. 굽는 과정에서 표면에 계수나무 모습이 나타난 달항아리도 있다.
포도무늬 항아리에는 거친 듯 간결한 아름다움이, 호랑이 용무늬 항아리엔 삶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해학과 여유가 있다. 김 씨의 손자국이 남아 있는 다완에서는 삶의 소박함을 만날 수 있다.
가난을 벗 삼아야 했던 도자기 인생은 시종 힘든 과정이었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태토를 고르고 물레질을 연습했으며 큰 산 두 개를 넘나들며 나무를 해 와 가마에 불을 지폈다. 운필법(運筆法)을 연마해 직접 도자기 표면에 그림을 그렸다. 힘든 과정을 견디게 해준 건 자긍심이었다. 그는 “우리 가문이 유일하게 조선 도예의 전통을 지켜 나간다는 점이 늘 자랑스러웠다”고 회고했다.
김 씨는 물레 성형부터 무늬 표현까지 전 과정을 혼자서 전통방식으로 진행한다. 1996년 유일하게 도자기 분야의 인간문화재(중요무형문화재 사기장 보유자)로 지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도자기는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캐나다 온타리오 박물관, 독일 동아시아박물관 등 유수 박물관을 비롯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 명사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50년 넘게 물레로 모양을 만들고 직접 무늬를 그려 넣고, 최후의 작업으로 불을 때는데 모든 과정이 늘 어렵습니다. 긴장의 연속이지요. 긴장을 푸는 것은 욕심을 버리는 겁니다.”
김 씨 가문은 한국 전통도예의 자존심이다. 이번 전시는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9대째 전통도예의 외길을 지켜가고 있는 한 가문에 대해 경외감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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