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이 좋은 마른 김에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살짝 발라 소금을 뿌려 구워내면 바삭하고 짭조름한 구이김이 된다. 김은 조선시대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 소개될 만큼 오랜 세월 먹어왔기 때문에 토종식품이란 인식이 강하지만 사실 양식으로 생산되는 김의 20%는 일본에서 들여온 품종이다.
2012년부터 김은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의 보호대상 작물로 지정돼 종자를 사고팔 때 품종 개발자의 허가를 받거나 일정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국내에서 특정 꽃이나 농작물을 재배할 때 종자 값의 일부를 로열티로 지불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다만 세계적으로 김 종자에 대해 로열티를 부과한 적이 없어 정확한 금액은 산정되지 않았다.
일본에서 주로 들여오는 품종은 ‘방사무늬김’이다. 방사무늬김은 부드럽고 질겨 김밥을 만들 때 주로 쓰인다. 일본인의 입맛에 맞아 수출도 많이 한다. 게다가 서식 환경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번식력이 강해 양식하기에 적합하다. 국내에선 UPOV를 대비해 방사무늬김 대신 김밥용 김으로 쓸 수 있는 신품종을 개발해왔지만 방사무늬김을 대체하지 못했다.
국립수산과학원 해조류바이오연구센터는 2010년 토종 ‘참김’을 기반으로 ‘버들참김’을 개발했다. 참김은 방사무늬김보다 부드럽고 특유의 향기가 좋다. 흔히 ‘옛날 김 맛’이라고 말하는 고소하고 향긋한 맛이 바로 참김 맛이다. 버들참김은 참김 특유의 맛을 유지하면서도 성장이 빠르고 잎의 폭이 좁아 소규모 양식장에서도 많은 양을 수확할 수 있다. 문제는 번식력. 하동수 해조류바이오연구센터 연구관은 “버들참김 양식장에 방사무늬김 한 개체만 들어와도 양식장 전체가 방사무늬 김으로 뒤덮인다”며 “맛이 우수하다고 무조건 양식업자에게 추천할 수는 없었다”고 밝혔다.
현재 김 신품종 개발 기술은 우리나라가 일본에 뒤지고 있지만 전체 생산량의 50%를 차지하는 자연산 김이 역전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우수한 품종을 효율적으로 양식하기 위한 일본의 ‘정갈한’ 바다와 달리 우리나라 바다는 종끼리 자유롭게 교배해 지역별로 다양한 종류(계통주)의 김이 산다. 같은 참김이라도 진도산과 완도산은 계통주가 달라 맛과 향이 다르다.
신품종을 개발하는 ‘육종’ 연구에 계통주는 큰 자원이다. 박은정 해조류바이오연구센터 연구사는 “연구센터 내에 해조류 유전자원은행을 마련해 117개 김 계통주를 보유하고 있다”며 “계통주끼리 교배하면 새로운 김 품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해조류바이오연구센터는 이미 특정 색을 지닌 ‘연지졸방참김(적색)’과 ‘녹두졸방참김(녹색)’을 개발해 2012년 신품종으로 출원할 예정이다. 신품종을 개발하면 김의 특성상 식탁에는 금방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김의 씨앗(종자)은 얇은 실 모양의 포자인 ‘사상체’다. 사상체는 세균이나 미세조류가 번식하듯 적당한 온도와 영양만 공급되면 스스로 번식한다. 미역이나 다시마처럼 1년 동안 키워 종자를 받지 않고도 한두 달 만에 금방 양을 불릴 수 있다. 이런 사상체의 특성은 김 종자의 로열티 책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로열티를 주고 김 사상체를 들여온 뒤 이를 임의로 번식하면 품종 개발자가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 연구관은 “양식사업자를 대상으로 내년부터 사상체를 임의로 불리면 벌금을 낼 수 있다는 경고와 고유 사상체는 신품종으로 등록하라고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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