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정재형, 유희열 그리고 UV… 런던 ‘구라젝트’

가요계 핫 아이콘 4인이 영국서 던지는 ‘음악잡설’

김태환 사진작가 제공

“대세에 묻어가는 것 아니야?”

서로가 ‘대세’라고 우기는 네 남자가 지난달 말 영국 런던에 모였다. 그들은 남에게 묻어간다는 ‘오해’를 받을까 걱정돼 이번 ‘만남’을 망설였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기자에겐 누가 대세인지는 물론이고 이번 만남의 목적조차도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비틀스를 연상케 하는 장발은 재미있어 보였지만 기자의 ‘의혹’에 더 불을 지피기만 했다.

정재형(41), 유희열(40), UV의 유세윤(31)과 뮤지(본명 이용운·30).

요즘 한국 가요계의 ‘핫 아이콘’이지만 서로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네 남자가 함께 작업한 신곡을 발표하기로 했단다. 신곡 발표는 22일.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는 모 패션회사가 기획한 ‘뮤직비디오인지 광고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이들의 런던 촬영에 4박 5일간 동행했다. 한 번에 모이기 힘든 네 사람이 풀어내는 이야기가 적잖이 기대됐다.

‘당연한’ 얘기지만 ‘역시나’ 연예인은 TV로 보던 것과는 좀 달랐다. 예능 신동으로 뜨고 있는 정재형은 점잖은 달변가였고, 유세윤은 전혀 까불거리지 않고 온화한 신사였다.(표정에서 장난기가 묻어나긴 했다.) 과묵할 줄만 알았던 뮤지는 예상 외로 말을 잘하고 주관이 뚜렷했다. 유희열만 일과 생활에 충실한, 기존의 이미지를 보여줬다.

○ 장난 같은 음악? 이번엔 브리티시 록이다

“부담스러웠다면서 왜 서로를 선택했어요?”

“사실 이번 프로젝트가 본질적으론 광고 촬영이라 처음엔 거절했어요. 너무 음악이 돈을 쫓아가는 것처럼 보일까 봐. 그런데 희열이 형이랑 재형이 형도 함께한다는 거예요. 형들이랑 함께하면 밉게 보이지 않을 것 같았죠.”

‘건방진 도사’ 유세윤답지 않게 웃음기 쪽 뺀 담백한 답변이 돌아왔다. 실제로 현재 UV는 광고계의 ‘블루칩’이다.

“요즘 저희한테 광고가 정말 많이 들어와요. 그런데 요구하는 것이 다들 뮤직비디오 콘셉트로 비슷해요. 하지만 이번엔 우리가 직접 표현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고, 영상도 제한 없이 찍을 수 있다고 해서 하기로 했죠.”

‘타이틀’ 욕심도, 돈 욕심도 별로 없다고 계속 강조했던 유세윤이었지만, 그의 말 속에서 음악에 대한 강한 욕심이 느껴졌다. 그것이 처음엔 장난으로 치부됐던 UV의 음악에 폭발적 반응을 가져온 것일까. UV는 1980년대 유로댄스풍과 ‘뽕끼’를 섞은 ‘이태원 프리덤’ 등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뮤지가 한마디 보탰다.

“신기한 게 원래 비틀스 콘셉트로 곡을 만들어 볼 계획이 있었어요. 희열이 형한테 부탁을 하려고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마침 제안이 딱 들어온 거예요.”

“처음에 나한테 보내준 악보, 뮤지 네가 직접 그린 거지? 그걸 보고 이거 되겠구나 싶었어요. 사실 음악을 한다고 하면서도 악보 못 그리는 친구도 많아요.”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UV와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던 유희열의 칭찬이 이어졌다.

“대놓고 오버를 하면서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오버’를 하면서도 ‘나 지금 오버하고 있어요’라는 게 보이는 게 주성치와 UV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죠. 저 같은 사람은 그렇게 못하죠.”

그는 이번 프로젝트 때문에 결혼 이후 매년 빠뜨리지 않고 갔던 가족여행도 함께하지 못했다.

“‘병× 같은 데 정말 멋있어.’ 그런 걸 제가 제일 좋아해요. UV는 그 어떤 애들보다 음악도 좋잖아요. 잘될 것 같아요. UV가 우리와 이런 작업을 할 거라고는 아무도 기대를 안 했을 테니까….”(정재형)

곡은 UV가 만들고 유희열이 1차 편곡을, 정재형은 유희열과 함께 코러스를 맡았다. 뮤지는 ‘브리티시 록’이라고 밝혔다. 브리티시 록은 1950년대 미국에서 들여온 로큰롤을 영국화한 것이다. 1960년대 이후 ‘본토’인 미국으로 역수출돼 선풍을 불러일으켰다. 비틀스를 필두로 롤링 스톤스, 오아시스 등이 대표적이다. “비틀스의 ‘헤이 주드’ 같은 느낌으로 가자고 서로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부분이 조금 덜 나온 것 같아 제가 약간 도와준 것”이라고 유희열이 설명을 덧붙였다.　　
▼ “요즘 아이돌 로봇 같아… ‘삑사리’ 내면 더 멋질텐데” ▼

○ ‘음악 프로그램’이 별로 없다?

유희열은 “10년 뒤에도 이 뮤직비디오를 보며 혼자 깔깔대고 웃을 것 같아. 4명 중에 내가 제일 웃기지?”라며 미소를 지었다. 영국 런던 세인트존스우드의 왕복 2차로 횡단보도. 우리에게도 익숙한,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 ‘애비 로드(Abbey Road)’의 흑백 재킷 사진 위로 네 남자의 유쾌한 걸음걸이가 덧씌워진다. 김태환 사진작가 제공

네 남자에게 빠질 수 없는 방송 이야기가 시작되자, ‘건방진 도사’ 유세윤의 혀가 날카롭게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실제 방송에선 ‘편집’될 만한 독설도 있었다.

“음악은 대놓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인데, 방송은 거짓말이 아닌 척 거짓말을 해야 되니까 너무 역겨워요. 나는 거짓말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인데, 사실처럼 거짓말을 해야 되는 게 웃겨서 못하겠어요.”

그대로 써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괜찮아요. 좀 써야 안 찾지. 하지만 찾을 거예요. 뽑아 먹을 게 있으면 써요. 방송은 재미없어진 지가 오래됐는데, 놓아주지를 않아서….(웃음)”

유세윤과 달리 뮤지는 방송에서 얼굴을 보기가 쉽지 않다. 유세윤의 생각에 영향을 받아서일까.

“UV로서 뮤직비디오로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UV라는 것도 영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요. 계속 저희가 나와서 장난치고 설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보는 사람들도 지루해지지 않을까요. 더 오래 즐기고 싶어서 천천히 가려고요.”

이번엔 정재형에게 물었다. “예능 프로그램엔 나오는데 음악 프로엔 왜 잘 안 나오시죠?”

“음악 프로그램이 별로 없잖아요?”

“뮤직뱅크나 뭐 이런 것들….”

“음악 프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의 예능감에 가려져 있던 그의 진지함이 새삼 묻어났다. 하지만 질문을 던진 기자가 좀 무안해졌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유희열에게 고개를 돌렸다.

“TV라는 매체는 지금도 잘 몰라요. 방송이 순간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은 그 어느 매체보다도 강한데, 그렇지만 방송은 ‘휘발’돼요. 반면 음악은 휘발되지 않고 남아 있는 존재죠.”

그렇다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는 ‘유 라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정재형, 루시드 폴 등은 유희열을 통해 주류 대중음악판에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을 예능의 ‘유재석 라인’처럼 ‘유 라인’이라고 부른다.

“그건 제가 라디오 프로그램 하나, TV 프로그램 하나를 진행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특히 ‘라디오 천국’은 음악을 잘하는 친구들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게 중심이에요. 그렇게 100% 선곡이 이뤄져요. 라디오 프로그램 3사 중에 아주 본격적으로 그렇게 선곡 방향을 잡는 프로그램은 단 하나도 없어요. ‘스케치북’에도 어찌됐든 그런 친구들이 간간이 나오고요. 비슷한 프로그램이 많다면 제가 그렇게 안 보이겠죠. 지금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 제가 유일할 테니까요.”

또박또박 떨어지는 그의 말이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유희열은 정말 ‘유 라인’을 비롯한 예뻐하는 후배들에게 특별히 해주는 것이 없을까.

“저에게 고마운 손님일 뿐이지 제가 뭘 베풀고 이런 것은 전혀 없어요. 단지 그 친구가 음악을 잘하는지에 대해서만 예민해하죠. 계속해서 많은 후배들의 음악을 들어요. 아, 그리고 제가 절대로 그 사람처럼 못할 것 같은 친구들을 좋아해요. 음악계에서 유일무이한, 대체 불가능한 친구들이 부럽고 좋죠.”

○ 재능있는 후배들, 음악 오래 했으면…

유희열의 말에 “아이돌 같은 경우는 대체가 가능하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그렇지 않아요. 아이돌 중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친구들도 있어요. 1년 단위로 구체적인 플랜을 짜서 연습을 해 무대에 오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그것을 제일 잘하니까 주목받고 있는 것이고. 독하게 시키는데 애들도 독하게 하죠. 그런 점들은 박수를 쳐 줘야죠.”

“저는 아이돌은 계속 대세일 것 같아요. 아이들의 얼굴과 몸짓에서 뿜어 나오는 그 젊음을 좋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음정, 박자가 너무 완벽하니까 그게 가끔 싫증이 나요. 무대가 즐거워서 ‘삑사리(음 이탈)’도 나고 하면, 오히려 더 멋질 것 같아요. 지금은 완전히 로봇처럼 되니까….”(뮤지)

뮤지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유세윤이 빙그레 웃었다. ‘독한’ 코멘트를 기대하며 왜 웃는지 물었다.

“아니에요. 맞아요. 정말 잘하는 애들도 있고, 나보다 못하는 애들도 있고.”

“이미 다양한 음악을 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이제 우리 세대만 잘하면 될 것 같아요.”(정재형)

‘대중음악 쪽에서도 클래식 쪽에서도 꺼리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자기를 표현했던 그가 한마디 더 덧붙였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음악을 잘해도 생계 등 여러 이유로 연속성을 가지고 음악을 하는 게 힘들다는 거예요. 아티스트들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다양한 아이디어, 논리, 문제의식들을 하나로 모아 깊은 음악을 할 수 있는데….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명작처럼 다양한 생각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거죠.”

6월 말부터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을 다녀왔다는 그는 시차 때문에 일상이 엉망이 되어버렸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낯선 곳에 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식당도 단골집에만 가고. 파리에서도 10년 정도 있었지만 가는 곳만 갔어요. 파리지앵들의 특징이 그런 거더라고요.”

이 말을 끝으로 정재형이 먼저 자리를 떴다. 매니저의 눈짓에 유세윤이 말했다.

“이제 MBC에 가봐야 돼서요.”

“전 SBS.”(뮤지)

“여기서는 핑계 댈 스케줄이 없네요.”(유세윤)

“세윤이 형이 거절의 달인이에요. 갑자기 귀가 안 들리는 척을 하기도 하고. 저한테는 말을 잘 안 하는데, 아무래도 형이 방송국을 자주 다니니까 같이 한번 일해보자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뮤지)

두 사람의 장난 아닌 장난이 계속 이어졌다. 마지막 남은 사람은 유희열.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생했다”는 말을 먼저 건네줬다. 촬영하는 사람보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항상 더 힘들고 지친다는 말과 함께.　　
▼ 비틀스 ‘루프톱 콘서트’ 연상 장면 20번 넘게 촬영 또 촬영 ▼

‘지붕 위(roof top)’에?- 이루어진 네 남자의 뮤직비디오 촬영 모습.

지난달 24일, 당장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검은 구름 사이로 해가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 그와 함께 영국 런던의 한 건물 옥상 위에서 네 남자의 공연이 시작됐다. 아이폰을 꽂은 스피커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비틀스의 전설적인 ‘루프톱(rooftop) 콘서트’와 얼추 비슷해 보였다.

“… 그리고 내 여자친구는 남자친구가 있다.”

분홍색 선 3개가 나란히 그려진 ‘삼디다스’ 슬리퍼를 신고 발톱에는 분홍색 매니큐어를 바른 유세윤의 잔잔한 내레이션으로 곡이 시작됐다. 가발을 쓰고 콧수염까지 붙인 뮤지가 드럼 스틱을 들어 정재형을 가리키며 립싱크를 이어갔다. 이제 정재형과 유희열의 차례. 두 사람의 양손에는 현장 스태프가 ‘미치게 비싸다’며 조심해서 다루라고 강조했던 기타가 들려 있었다.

여자에게 춤을 청할 때 건네는 정중한 인사를 마지막으로 금세 공연이 끝났다.

“기타 케이스 안에 피크 없죠? 손이 나갈라 그래(아프다는 뜻).”

립싱크인데도 실제로 노래에 맞춰 연주를 한 유희열이 피크를 찾았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촬영이 또다시 시작됐다.

“코러스할 때 형들이 양쪽에서 제 쪽으로 들어오셔야 될 것 같은데요.”(유세윤)

“사비(후렴구)에서 갑자기 주머니 속에 있는 피크를 꺼내서 치면 어떨까요?”(뮤지)

“여기서 더 재미있게 하려면, 이 기타를 베이스인 척 치면 좋을 것 같아.”(유희열)

“정말 몰라서 기타 가지고 베이스처럼 쳤다고 말하는 애는 없겠지?”(정재형)

촬영이 한 번 끝날 때마다 네 사람의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이번에는 2배속으로 갈게요. 빨라진 노래에 맞춰 동작들을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연출을 맡은 이사강 감독(31)의 주문이었다. 이 감독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팔에 모터가 달린 듯’ 급하게 드럼 스틱을 흔드는 뮤지를 보며 유희열이 ‘빵’ 터졌다.

20번 넘게 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만큼 마력이 있는 것일까. 어느새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고 있는데, 이 감독의 ‘컷’ 사인이 다시 한 번 떨어졌다. 뒤이어 그녀의 한마디가 촬영장에 울려 퍼졌다.

“자, 이제 사람들을 좀 모아보세요.”

루프톱 콘서트에서처럼 관객들이 모여들게 하라는 뜻이었다. 20번 넘게 한 연주를 다시 하라는 말이기도 했다. 연예인,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런던=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Profile

정재형은 최근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에 출연해 ‘파리지앵’ ‘가래요정’ ‘음악의 신’등 다양한 별칭을 얻음. 1995년 그룹 ‘베이시스’로 데뷔했으며, 1999년 파리로 떠나 파리 고등사범음악학교에서 영화음악과 작곡, 최고연주자 과정을 마쳤음.

유희열은 ‘여전히 아름다운지’ ‘좋은 사람’등으로 큰 인기를 모았던 프로젝트 팀‘토이(Toy)’를 이끌었음. 잔잔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진행으로 라디오 DJ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음악프로그램 MC로도 활약하고 있음. 1994년 데뷔했으며,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졸업

UV는 개그맨 유세윤과 가수 뮤지로 구성된 그룹. 2010년 데뷔곡 ‘쿨하지 못해 미안해’를 시작으로 ‘집행유예’등으로 큰 인기를 모았음. 올해 3월 가수 박진영과 함께 발표한 ‘이태원 프리덤’은 공개되자마자 온라인 음원사이트 1위에 오르기도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