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해 보이는 표지의 장난감 공룡 그림만 보고 책장을 넘겨보지 않는다면 후회할 수 있다. 영화처럼 사실적인 그림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림의 구도나 스토리 전개는 영화 ‘쥬라기공원’을 연상시킨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점은, 첫 장의 짧은 글을 빼면 이야기의 전개를 모두 그림으로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 장에 나온 그 짧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비 오는 날, 공원에 나간 아이들이 발견한 가방 하나, 가방 속에 들어 있던 색색의 분필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데….’
이어지는 그림들은 모두 아이들의 속눈썹이나 손등의 핏줄까지 나타낼 정도로 사실적이다. 분필을 발견한 세 명의 아이는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시도를 한다. 한 여자 아이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원망스러운 듯 노란 분필을 들고 바닥에 태양을 그렸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바닥의 노란 태양이 갑자기 밝은 빛을 내더니 서서히 떠올라 비를 그치게 하면서 정말 하늘로 떠올라 태양이 되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의 놀라는 표정이 생생하다.
믿을 수 없는 경험을 한 아이들이 그냥 물러날 리 없다. 우산을 팽개친 다른 여자 아이는 주황색 분필로 바닥에 나비를 수십 마리 그렸다. 바닥에서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하더니 호랑나비 수십 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남자 아이도 자기가 좋아하는 공룡을 그렸다. 그러자 공룡도 살아났다. 놀라서 원통형 미끄럼틀 속으로 숨는 아이들은 공룡을 어떻게 물리쳤을까.
사진보다도 구체적인 그림과 빠른 스토리 전개 때문일까. 행간을 읽듯 그림과 그림 사이에 숨어 있는 장면들을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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