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에 쓰인 거중기는 담을 쌓는 기능이 아니라 수레에 돌을 올리는 기능만 했을 뿐입니다. 단시간에 거대한 성을 완성했던 원동력은 효율적인 경영시스템이었죠.”
서울의 자율형사립고인 하나고와 일반고인 마포고 학생들이 공동 연구를 통해 수원 화성의 건축과정에 관한 새로운 주장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를 어린 학생들이 어떻게 재해석했을까.
두 학교는 한국공학커뮤니케이션연구회의 도움을 받아 융합교육과정을 올 초 처음 도입한 뒤 ‘수원화성 연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다. 융합교육과정은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연구하는 방식. 범교과적 글쓰기와 말하기 교육도 포함해 논문을 만들기로 했다.
두 학교의 학생 90명은 10년으로 예상됐던 수원 화성 건축 작업을 2년 반 만에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물리 수학 국문학 경영학 등 다양한 학문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각자가 맡은 분야를 연구해 통합적인 결론을 내리기까지 9개월이 걸렸다.
물리팀은 거중기를 이용해 신속한 작업이 가능했다는 가정 아래 당시 거중기를 실제로 복원해 실험을 했다. 이를 통해 거중기가 담을 쌓는 크레인이 아니라 수레에 돌을 올려놓는 고정형 스태커(stacker)의 역할만 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지금까지 학계는 이런 부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연구를 지도한 이효근 하나고 교사는 “사회 및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학생들이 공학적인 방법으로 검증했다. 이런 것이 바로 융합교육의 힘”이라고 말했다.
프로젝트 자문을 담당한 연세대 김문겸 토목공학과 교수는 “수원 화성 건축과정에서 거중기가 실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검증한 사례는 없었다”며 “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받으려면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이번 연구결과만으로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공정 기간을 4분의 1로 당길 수 있었던 데는 다른 비결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성성역의궤’의 내용을 해석해 당시에도 자본주의 원리에 근거한 경영 시스템이 적용됐다는 사실을 국문학팀이 밝혀냈다.
예를 들어 일을 잘하는 일꾼은 최대 800일까지 일을 할 수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일꾼은 30일밖에 하지 못했다. 능력에 따른 차등 대우가 있었다는 뜻이다. 건축에 필요한 돌 같은 자재도 일꾼에게 무조건 구해 오라고 지시하지 않고 크기와 무게에 따라 구매를 했다는 사실도 효율적인 경영 시스템의 사례라고 학생들은 해석했다.
하나고 2학년 이종현 군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모여 이룬 성과라서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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