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죽어도 죽지 못하는 저주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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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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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됴화만발’
대본★★★☆ 연출★★★☆ 연기★★★☆ 무대★★★★

동양적인 영생불사의 판타지를 프랑켄슈타인의 악몽으로 치환한 창작극 ‘됴화만발’. 죽어도 죽지 않는 자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의 공백을 무협과 공포, SF영화 속 이미지로 채워 넣었다. 남산예술센터 제공
동양적인 영생불사의 판타지를 프랑켄슈타인의 악몽으로 치환한 창작극 ‘됴화만발’. 죽어도 죽지 않는 자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의 공백을 무협과 공포, SF영화 속 이미지로 채워 넣었다. 남산예술센터 제공
뱀파이어와 좀비 그리고 프랑켄슈타인(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괴물)의 공통점이 뭘까. 죽었지만 죽지 않은 존재라는 점이다.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통찰을 펼쳤다. 인간은 두 가지 양태로 존재한다. 산 자(the living)와 죽은 자(the dead)다. 그런데 양자에 속하지 않는 제3의 존재가 있을 수 있다. 바로 죽지 않은 자(the undead)다.

얼핏 말장난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는 칸트의 긍정판단 부정판단 무한판단의 3가지 판단범주를 대중문화의 상상력에 투사한 것이다. 무한판단은 부정판단의 내용을 긍정판단의 형식으로 제시함으로써 긍정도 부정도 아닌 새로운 인식범주를 연다. 이에 따라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죽지 않은 자, 곧 살아있는 망자(the living dead)라는 제3의 범주가 생겨난다.

살아있는 망자는 일상을 뒤흔든다. 그것을 접할 때 첫 번째 반응이 경악과 공포인 이유다. 이들이 공포영화의 단골소재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들을 다룬 공포영화는 종종 존재론적 성찰과 맞닿는다. 이분법의 지배를 받는 직관적 세계이해에 치명적 균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낯익은 것을 낯설게 만드는 것, 하이데거가 말한 섬뜩함(unheimlich)의 효과다.

조광화 씨가 쓰고 연출한 연극 ‘됴화만발’은 이런 언데드(undead)의 미학을 갖춘 다양한 요소에 뿌리를 뻗는다. 연극의 원작은 전후 일본문단의 총아로 불렸던 사카구치 안고(1906∼1955)의 단편소설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에서’다.

원작은 일본미(美)의 상징이라 할 벚꽃의 아름다움 뒤에 숨어 있는 죽음의 향기를 날카롭게 포착했다. ‘아름다움의 근원은 공포이며, 모든 공포의 어머니는 죽음’이라는 고대 그리스의 미학을 일본 전통의 괴담 형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연극은 여기에 진시황의 명으로 불로초를 찾아 동방으로 떠났던 서불 일행의 설화를 접목했다. 소설의 주인공 사무라이는 이들의 수행무사 K(박해수)로 변신한다. 그는 영생의 비밀을 캐기 위해 3000명의 동남동녀를 상대로 실시한 의원의 생체실험 결과로 괴물 프랑켄슈타인을 닮은 언데드가 된다. 그와 함께 벚꽃은 실험에 실패한 동남동녀의 시체를 자양분 삼아 자라난 복사꽃이 된다. 영생불사의 희망을 상징하는 무릉도원의 꽃에 핏빛 향기를 불어넣은 셈이다.

모든 언데드의 특징은 ‘집요한 반복’이다. 그들은 살아있을 때 충족 받지 못한 욕망을 채우기 위한 행동을 무한 반복한다. 기억을 상실했지만 홀로 살아남은 외로움에 사무친 K는 나그네를 습격해 사내는 죽이고 여인은 아내로 취한다. 그러다 복사꽃을 닮은 여인 단이(장희정)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단이는 전형적 팜파탈이다. K의 산채로 오자마자 다른 아내들을 모두 죽일 것을 요구하고, 화려한 삶을 위해 대처로 나가 살면서도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사람들의 목을 요구한다. 바로 언데드의 집요한 반복이다. K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이를 들어주다 환멸을 느껴 산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단이가 피를 먹고 자란 복사꽃의 원령(怨靈)이 깃든 언데드임을 발견한다. 동시에 자신 역시 저주받은 언데드임을 자각한다.

하지만 연극은 이렇게 언데드가 환기시키는 존재에 대한 성찰을 심화시키지 못한다. 그보다는 주인공 K의 외로움에 감정 이입된 채 낭만적 이미지로 그 텅 빈 속을 채운다. 그것도 진시황의 불로초를 먹고 영생불사가 된 무사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홍콩영화 ‘진용’이나 사막 모래바람 속에 고독한 무사들의 대결을 그린 왕자웨이 감독의 ‘동사서독’ 같은 기존 영상매체의 이미지 복제다.

관객이 영상매체에서 익숙한 이미지를 무대언어로 형상화한 것에 짜릿함을 느끼면서도 공허함을 지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쩌면 무수한 대중문화 이미지의 짜깁기로 탄생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연극 자체가 이미 프랑켄슈타인 아닐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25일까지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2만5000원. 02-758-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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