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탤런트 홍수현(오른쪽) 이민우 씨가 경혜공주 부부 역을 맡았다. 이들은 금실이 매우 좋은 부부였다고 한다.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공주가 곧 대청에 들어가 말하기를 ‘나는 왕의 딸이다. 비록 죄가 있어 귀양을 왔지만 수령이 어찌 감히 내게 관비의 사역을 시킨단 말이냐?’ 하므로 순천 부사가 부리지 못하였다.”(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서)
현재 방영 중인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아버지 수양대군(김영철 분)에게 반기를 든 세령(문채원 분)이 공주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노비가 됐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선 세령 대신 드라마의 또 다른 주역인 사촌 경혜 공주(홍수현 분)가 비참한 관노비로 살아야 했다. 경혜는 문종의 장녀이자 단종의 누이. 최근 출간된 책 ‘조선공주의 사생활’(최향미 지음·북성재)이 경혜공주에 대한 사실(史實)을 전한다.
책에 따르면 1461년 경혜의 남편 정종(鄭悰)은 역모 혐의를 받아 죽음을 당했다. 경혜 역시 연좌처벌돼 전라도 순천의 관노비로 전락했다. 순천 부사가 임신한 경혜에게 일을 시키려고 했지만, 경혜는 “나는 공주다”라고 호통 치며 거절했다고 한다. 다행히 노비 기간은 길지 않았다. 혈족까지 냉정히 죽였던 과거를 후회한 세조가 경혜를 면천해 주고 한양의 궁궐 가까운 곳에서 살게 해 주었다.
경혜는 아들과 딸을 하나씩 낳았다. 그런데 아들 정미수가 16세가 되자 조정 대신들이 ‘대역죄인의 아들이니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다. 당시 나이 어린 왕 성종 대신 수렴청정을 하던 세조의 부인 정희왕후는 “앞으로 정미수를 연좌 처벌하자고 논하는 자가 있으면 엄벌에 처하겠다”고 경고하며 경혜의 아들을 지켰다.
1473년 경혜는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정미수는 과거에 합격해 출셋길을 걸었고, 경혜의 딸도 성종의 보살핌 아래 성대한 혼례를 올렸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최향미 씨는 KBS ‘역사스페셜’ ‘역사추적’ ‘역사기행’ 등 역사 관련 다큐멘터리 작가로 20여 년간 활동했다. 책은 최상류층 여성이지만 굴곡진 인생을 살아야 했던 조선시대 공주와 옹주들의 삶에 주목했다. 경혜공주를 비롯해 성종의 딸 휘숙옹주, 선조의 딸 정명공주, 태종의 딸 정신옹주, 중종의 딸 효정옹주, 효종의 양녀 의순공주, 예종의 딸 현숙공주 등 7명의 생생한 삶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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