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 화백의 ‘대야망’ 원고를 복원하고 있는 한국만화박물관의 심현필 연구원.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경기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의 지하 수장고. 1만 권 이상의 단행본과 20만 장이 넘는 희귀 만화 원본들이 보관돼 있는 곳이다.
27일 수장고 한쪽에서 심현필 전임 연구원(31)이 흰 장갑을 끼고 곧 바스러질 것 같은 누런 종이를 레이저에 비추고 있었다. 절판돼 볼 수 없는 고전 만화 원본을 복원하는 중이었다. 독일에서 8000만 원이 넘는 비용을 주고 들여온 오버헤드 스캐너에서 흰 레이저가 원본 종이를 훑었다.
오랜 세월 지나면서 여기저기 손상된 원고 종이와 필름의 상처를 메우고 흑백 캐릭터에 색상을 입힌다. 1960, 70년대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수정액을 덧칠했던 만화 원본들이 심 연구원의 손을 거쳐 하나둘 원래 모습을 되찾아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임창 ‘땡이의 사냥기’, 방학기 ‘타임머쉰’, 허영만 ‘각시탈’이 최근 복간됐다. 모두 1960∼80년대를 대표하는 명작들이다.
심 연구원은 “‘각시탈’ ‘타임머쉰’ 등을 다시 읽고 싶다는 중년분들의 전화가 매일 두세 통씩 걸려온다. 복간 후 일주일도 안 돼 완판될 정도로 고전 만화에 대한 향수가 대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각시탈’은 일제강점기 각시탈을 쓴 조선 청년이 일본인들을 무찌른다는 내용. 1970, 80년대 큰 인기를 얻었지만 절판된 이후 원본과 출판필름, 단행본 모두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져 왔다.
“소설은 고전 명작이라 해서 계속 재출간되는데 만화는 옛것의 명맥을 잇지 못했던 게 현실입니다. 우리 만화에도 명작이 많습니다. 이번에 복간한 세 작품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의 어린 세대와 부모 세대가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명작입니다.”
절판된 만화의 원본이나 필름, 단행본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수집가들이 가지고 있다 해도 고전 만화책이 권당 몇천만 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선뜻 내놓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니 헌책방에서도 내주지 않았다. 원작자의 반대도 넘어야 할 산이었다.
“허영만 선생님도 처음엔 반대가 심했어요. ‘옛 애인은 기억 속에 있는 게 낫다’는 말씀뿐이셨죠. 당시 허 선생님도 원고가 없어서 각시탈을 찾고 있던 중이었는데, 가까이 알고 지내던 수집가가 전권을 갖고 있었는데도 공개하질 않더군요. 제가 수집가 10명을 접촉한 끝에 겨우 ‘각시탈’이 연재됐던 잡지 일곱 권을 구했고 그때서야 허 선생님도 승낙했습니다. 6개월이 걸렸습니다.”
웹툰 시대에 고전 만화를 얼마나 보겠느냐는 질문에 심 연구원이 말했다.
“웹툰이 한창 유행이지만 명작으로서의 고전 만화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웹툰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명작은 계속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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