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호킹이 백기 든 블랙홀 25년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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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일 03시 00분


◇ 블랙홀 전쟁/레너드 서스킨드 지음·이종필 옮김/580쪽·2만5000원·사이언스북스

블랙홀은 이상하고 특별하고 수수께끼인 존재다.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블랙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책이 말하는 바가 바로 ‘블랙홀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이상하고, 더 특별하고, 더 신비로운 존재’라는 것이다.

스탠퍼드대의 이론물리학 교수이며 입자물리학과 중력 및 끈 이론의 대가인 저자 레너드 서스킨드는 블랙홀을 둘러싸고 스티븐 호킹과 무려 25년 동안에 걸쳐 논쟁을 벌였다. 논쟁의 핵심은 1983년에 나온 호킹의 “블랙홀에 들어간 정보는 사라진다”는 주장이다.

블랙홀은 그 내부와 외부를 서로 연결될 수 없는 두 세계로 나누어 놓는다. 그러므로 일단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면 책이든 컴퓨터든, 그 물건의 정보는 다시는 이 세상에 돌아올 수 없으며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이 호킹의 주장이었다. 대부분의 일반 상대론 학자들은 그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호킹의 주장을 들은 토프트와 서스킨드는 양자역학적으로 그 내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기나긴 연구의 여정을 보낸다.

20세기에 인간이 이룩한 가장 빛나는 지적 성과인 중력 이론과 양자역학은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적어도 인간은 아직 이들을 조화시키는 법을 모른다. 그러나 블랙홀과 정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자역학적으로 블랙홀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 책은 이 과제를 위해 사투한 서스킨드의 기록이다. 그 과정에서 서스킨드와 토프트는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 우주의 모든 정보가 우주를 둘러싸고 있는 2차원의 면 위에 있고 이 우주는 그 정보들의 홀로그램일 수 있다는 홀로그래피 원리와, 블랙홀의 사건 지평면에서 일어나는 블랙홀 상보성 같은 새로운 개념과 관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끈 이론과, 말다세나의 반 드지터 공간의 이론 등을 통해서 마침내 호킹은 2007년 자신의 주장이 잘못됐음을 인정했다. 이처럼 지금까지 인간이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는 세계를 추상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이야말로 이론물리학이 보여주는 가장 아름답고 숭고하고 흥미로운 모습이다.

이는 반드시 두 사람만의 논쟁도 아니었다. 스트로민저와 호로비츠 같은 일반 상대성 이론의 전문가들은 호킹의 편에 섰고, 게이지 이론이 양자역학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을 증명해서 1999년 노벨상을 수상한 네덜란드의 토프트 같은 사람은 서스킨드와 견해를 같이 했다. 그러니까 이는 어떤 의미에서 호킹과 같이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중력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토프트로 대표되는 양자 물리학자들 사이의 논쟁이었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호킹의 주장은 비록 틀렸지만 이 모든 새로운 관점과 이해와 물리학의 진보를 가져오게 한 것은 바로 호킹의 ‘틀렸지만 통찰력 있는’ 질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쟁의 진정한 주역은 호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에서 서스킨드 역시 호킹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 위대한 틀린 질문을 하는 것은 수백 개의 평범한 옳은 이론보다 더 훌륭한 일이다.

이강영 건국대 물리학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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