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만나는 詩]말이 시를 뚫고 나와 불쑥 내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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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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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수명 시인
이수명 시인
수백 마리의 새들이 들끓고 있다. 한 마리의 새가 새들을 뚫고 날아가고, 새들은 돌을 뚫고 지나가기도 한다.

아니다. 새는 새가 아니고, 돌은 돌이 아니다. 새와 돌이란 시어를 빈칸으로 두자. 그 빈 공간에는 시도, 삶도, 바로 당신도 들어갈 수 있다. 그 순간 시어들은 날아오르고, 의미는 끝없이 확장한다.

‘이달에 만나는 시’ 10월 추천작으로 이수명 시인(46)의 ‘새를 전개하다’가 선정됐다. 이 시는 지난달 나온 시집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문학과지성사)에 실렸다. 시인 이건청, 장석주, 손택수, 김요일, 이원 씨가 추천에 참여했다.

이수명 시인은 이 시에 대해 “우리 존재와 존재들이 부딪히는 장면을 쓴 것”이라고 했다.

“비가 오면 항상 많이 오고, 밖에 나가면 차들이 가득하죠. 언제나 그 무언가가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고, 들끓고 있죠. 눈에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하고, 다가오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는 것들…. 항상 주위에 있는데 딱히 뭐라고 이름 붙이기 힘든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1994년 등단해 다섯 권의 시집을 낸 그는 새로운 시어를 꾸준히 모색해온 모더니스트다. 무수한 갈래로 해석 가능한, 아니 해석 불가능한 시어들을 더듬다 보면 시는 낯설지 않다. 불쑥 내 앞에 다가와 있다.

“시가 난해하다”고 하자 시인은 수줍은 듯 웃었다. “연결해서 어떤 의미를 만들거나 결론을 내지 말고, 그냥 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김요일 시인은 “내가 되고, 돌이 되고, 새가 되는 세계. 아무렇지 않은 듯 펼쳐 놓은 이수명의 시는 이미 시를 떠났다. 시를 떠난 시의 해석은 독자들의 몫이다”라며 “나는 ‘새’를 ‘시(시인)’로 읽는다”며 추천했다.

“이수명의 시는 언어를 통해서 색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삶과 언어가 뒤섞이고 언어라는 것이 결국 삶이라는 것으로 치환된다. ‘새’를 ‘생(生)’으로 바꾸는 것도 한 독법(讀法)”이라고 이원 시인은 말했다.

손택수 시인의 추천평은 이렇다. “시인의 길들여지지 않는 미학이야말로 어쩌면 모국어의 새로운 꿈이 아닐까. 그 꿈속에서 나는 ‘새’를 ‘사이’로도 읽어보고 ‘돌’을 ‘乭(이름)’로도 읽어본다. 한껏 벌어진 ‘(틈)새’를 뚫고 날아온 ‘이름’! 아무려나, 이 시는 해석 의지를 무력화시키는 에너지로 충일돼 있다.”

이건청 시인은 김영석 시인의 시집 ‘바람의 애벌레’(시와시학)와 이채강 시인의 시집 ‘등불소리’(서정시학)를 추천하고 “김 시인은 서정과 사유가 탄탄하게 결합해 견고한 이미지를 보여줬으며 이 시인은 상당히 깊이 있는 이미지와 상징을 펼친다”고 평했다.

장석주 시인은 이혜미 시인의 첫 시집 ‘보라의 바깥’(창비)을 꼽으며 “아무리 꺼내 써도 소진되지 않는 풋풋한 젊음이 느껴진다”는 평을 내놓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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