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웨일즈의 작은 마을 헤이온와이(hay-on-wye)를 세계적인 책 마을로 만든 '헌책왕' 리차드 부스(73·Richard Booth)가 지난 1일 오전 경기도 파주출판도시에서 개막한 '파주북소리 2011'에 참석해 책 마을의 비전과 헌책에 대한 신념 등에 대해 강연했다.
부스는 1960년대 초 옥스퍼드대를 졸업하자마자 다른 동급생들과 달리 런던이 아닌 평범한 시골 마을 헤이온와이에 정착했고 소방서 건물을 사들여 헌책방을 열었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헌책을 사들이기 시작한 그는 오래된 성과 버려진 집, 창고 등을 고서점으로 바꿔나갔다. 1976년 4월 1일 만우절에는 '헤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스스로 '헤이온와이 고서 왕국의 국왕'으로 취임했다.
헤이온와이가 성공하면서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등에서도 이를 본뜬 책마을이 앞 다퉈 생겨났다. 파주 헤이리 역시 헤이온와이에서 개념과 이름을 따왔다.
부스는 "어린 시절 일본에서 수입된 도자기의 포장지가 일본의 헌책인 것을 보고 동서양의 연결 고리를 발견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며 "헌책의 가치를 깨닫고 헤이온와이에 책마을을 조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치와 상업 논리에 좌우되는 신간 대신 헌책이야말로 지식의 진정한 보고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부스는 "TV나 페이스북 등 대중매체 환경에서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정보의 홍수에 시달리고 있다"며 "헌책의 교류는 세계 방방곡곡에 방대한 지식을 제공하는 동시에 환경 파괴도 줄일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는 현대사회에서도 헌책의 미래는 밝다고 전망했다.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대량 생산되는 신간의 재고가 역설적으로 헌책방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는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과 영국 공영방송 BBC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부스는 "이들은 책방의 민중화에 철퇴를 가하고 있다"며 "헌책의 정신을 간과한 채 헤이온와이 책 축제를 상업적 이벤트로 이용하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책의 진실성이 무너진다면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보다 더 처참한 미래가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헤이온와이의 성공 비결은 상업적 잠재력 대신 책이 지닌 무한한 지적 잠재력을 믿고 이를 장기적인 비전으로 삼아 활용한 것입니다. 파주북소리 역시 지적 자원을 지닌 출판사와 지역 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거듭났으면 합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책 축제를 지향하는 파주북소리 2011은 오는 9일까지 260여개의 출판사와 문화예술단체, 1000여 명의 저자가 참여한다. 축제 기간 파주출판도시 곳곳에서 다양한 전시와 강연, 공연이 이어진다.
자세한 축제 일정은 파주북소리 공식 홈페이지(www.pajubooksori.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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