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중록-이상신 “고민 또 고민…츄리닝 1편에 6시간 걸리죠”

  • Array
  • 입력 2011년 10월 4일 07시 00분


즉석에서 쓱쓱 칠판에 그린 ‘츄리닝’ 1000회 돌파 기념 캐릭터 앞에서 국중록(왼쪽)·이상신씨가 ‘넘버원’을 외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즉석에서 쓱쓱 칠판에 그린 ‘츄리닝’ 1000회 돌파 기념 캐릭터 앞에서 국중록(왼쪽)·이상신씨가 ‘넘버원’을 외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벌써 1000회라고요? 아이디어 뱅크는 카페
우린 선후배 사이…작업하면서 2년간 동거
반전개그·건전만화 스포츠동아와 잘 맞아


“솔직히 연락 받고 놀랐어요. 1000회라니, 믿기지 않더라고요. 한 500회 넘었나 했는데. 기쁘기도 하지만, 앞으로 더 힘들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스포츠동아에서 만난 ‘츄리닝’의 스토리작가 이상신 씨가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스포츠동아의 인기 연재만화 ‘츄리닝’이 10월 4일로 연재 1000회를 맞았다. 2008년 7월 1일 첫 연재를 시작한 이래 장장 39개월이란 대장정 끝의 쾌거다.

‘츄리닝’은 이상신(36·글), 국중록(35·그림) 두 작가가 2003년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재학 중 한 신문사에 투고를 했다가 덜컥 채택되며 연재를 시작한 작품이다.

국중록(이하 국) :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1년만 하기로 했어요. 저희도 1년하고 다른 거 할 생각으로 시작한 거죠. 그런데 막상 1년이 되니까 ‘1년만 더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1년만 더, 1년만 더’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2008년 7월 1일 스포츠동아에 첫 연재가 시작된 이래 ‘츄리닝’의 편집 디자인은 조금씩 세련되고 슬림한 모습으로 변화해 왔다.
2008년 7월 1일 스포츠동아에 첫 연재가 시작된 이래 ‘츄리닝’의 편집 디자인은 조금씩 세련되고 슬림한 모습으로 변화해 왔다.

스포츠동아 연재기간을 포함해 한 작품을 9년 가까이 끌어온 ‘츄리닝’의 힘이 궁금했다. 몇 명 되지 않는 캐릭터 안에서 그처럼 무궁무진한 소재를 뽑아내는 능력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다.

이상신(이하 이) : “제일 큰 원동력은 생계유지죠(하하하!). 사실 ‘츄리닝’을 시작하고 나서 3년쯤 되니까 한계가 느껴졌죠. 한동안 방황을 했습니다. 요즘에는 주변에서 주로 소재를 찾아요. 사회적 이슈에도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이 씨는 집에 작업실을 마련해놓고 있지만 아이디어를 구할 때는 반드시 밖으로 나간다.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휴대폰을 꺼내 그날의 주요 뉴스를 훑으면서 소재를 찾는다.

아이디어가 나오면 작업실로 돌아와 칸을 나누고 대사를 집어넣는 콘티작업을 한다. 콘티가 완성되면 이를 국중록 씨에게 보내고, 국 씨는 그림작업에 들어간다. ‘츄리닝’ 한 편을 그리는 데 6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이 씨와 국 씨는 대학 선후배 사이다. 처음 ‘츄리닝’ 연재를 시작하면서 2년 가까이 동거생활을 하기도 했다. 연재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고료는 정확히 5-5로 나눈다.

국: “연재를 시작하고 얼마 안 지나 함께 살았어요. 처음에는 방이 한 칸짜리였죠. 방 양 쪽에 책상 두 개를 놓고, 잠은 가운데에서 같이 잤습니다. 자다보면 살이 안 닿을 수가 없잖아요. 서로 안 닿으려 등을 돌리고 자지만, 자다가 깨보면 상대방 얼굴이 코앞에 와 있는 거죠.”

이: “우리 둘 다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거든요. 낯가림이 심한 편이고. 그나마 나중에 방 두 개짜리로 이사하니까 좀 낫더라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에 대해 두 작가는 일명 ‘지구에 온 목적이 뭐냐’ 편을 꼽았다. 못생긴 여자가 예쁜 척을 하자 상대 남자가 심각한 포즈(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따왔다고 한다)를 취하고는 여자에게 “지구에 온 목적이 뭐냐”라고 묻는 장면으로 끝나는 만화였다.

‘츄리닝’은 ‘반전’을 코드로 한 개그만화다. 폭력과 외설을 배제한 건전만화라는 점에서 ‘가족형 스포츠신문’을 지향하는 스포츠동아와 코드가 잘 맞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란다.

이: “한 번은 집창촌을 소재로 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부모님이 ‘츄리닝’을 가끔씩 챙겨보실 때였죠. 오랜만에 집에 갔는데 어머니가 신문을 들고 오시더니 ‘이 내용은 이해가 안 간다’고 하시는 거예요.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갔죠. 그 후로는 외설적인 내용은 피하게 되더라고요.”

개그만화를 그리고 있지만, 정작 두 사람이 하고 싶었던 작품은 정통 극화였다. 이 씨는 “멋쟁이 만화가 하고 싶었다”고 표현했다. 개그만화를 하다보니 “‘츄리닝’의 작가들은 개그맨보다 웃길 것”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단다.

이: “‘츄리닝’이 인기를 끌게 되자 여기저기서 인터뷰를 하자고 요청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항상 사진기자 분들이 ‘사진 찍을 때 웃긴 표정을 지어라’하고 주문을 하시는 거예요. 가뜩이나 내성적인 성격인데 혀를 내밀고, 눈을 까뒤집고… 정말 힘들었죠.”

대학생 시절 ‘츄리닝’을 시작한 두 사람은 어느새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다.

이·국: “이러다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츄리닝’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그것도 썩 나쁘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 회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반전만화 ‘츄리닝’을 많이 사랑해 주세요.”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트위터 @ranbi36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