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중궁궐 서화 속에 조선이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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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1일 03시 00분


■ 리움-간송미술관서 고미술전

리움의 ‘조선화원대전’에 출품된 ‘환어행렬도’(1795년경)는 김득신을 비롯한 화원들이 정조의 화성행차를 꼼꼼하게 기록한 그림이다. 전시에선 쌍방형 디지털 장비를 설치해 관객들이 세부까지 감상하게 했다.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리움의 ‘조선화원대전’에 출품된 ‘환어행렬도’(1795년경)는 김득신을 비롯한 화원들이 정조의 화성행차를 꼼꼼하게 기록한 그림이다. 전시에선 쌍방형 디지털 장비를 설치해 관객들이 세부까지 감상하게 했다.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어두운 전시실에 들어서면 해와 달이 함께하는 ‘일월오악도’가 중앙에 좌정해 있다. 그 옆으로 영조 임금의 건강 회복을 축하하는 잔치를 기록한 그림, 화려한 모란도 병풍이 나란히 자리 잡았다. 조선의 궁궐에서 사용한 그림에 둘러싸여 있으니 마치 역사를 거슬러 시간여행을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이 한국 회화사의 대표적 예술가 집단인 화원(畵員)의 활약상을 조명한 ‘조선화원대전’을 마련했다. 5년 만에 리움에서 열리는 고미술 기획전으로 13일부터 내년 1월 29일까지 국보 1점, 보물 12점을 포함해 110여 점을 선보인다. 4000∼7000원. 02-2014-6900

화원이란 국가에 소속된 직업화가를 일컫는 말. 이들은 왕실의 통치 이념을 시각화한 그림과 더불어 당대 화가, 후원자들과 교류하면서 ‘관념 산수’에서 속된 그림까지 다양한 작품을 제작했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최초 공개된 가로 길이 996cm의 ‘동가반차도’와 일본 국립박물관에서 임차한 ‘유묘도’를 비롯해 유·무명 화원의 작품을 집대성한 뒤 이를 디지털 장비를 활용해 새로운 전시공학의 개념으로 버무렸다는 것. 덕분에 기존 고미술 전시와 차원이 다른, 웅장하면서도 현대적인 전시가 꾸려졌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도 가을 정기전으로 ‘풍속인물화대전’을 16∼30일 준비했다. 신윤복의 ‘미인도’와 ‘월하정인’ 등 눈에 익은 명작들이 대거 선보여 미술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조선의 인물, 풍속화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과정을 짚어볼 기회다. 무료. 02-762-0442

○ 눈부신 전시연출의 성취

‘조선화원대전’은 문인화 전통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던 조선 화원의 미의식을 폭넓게 재조명한 동시에 첨단기기와 개성 있는 공간 연출로 그들의 붓이 기록한 조선의 모습을 재발견하게 이끈다. 이를 위해 1층은 왕의 행렬이 담긴 작품을 긴 통로를 따라 감상하고 궁중문화의 장엄함을 느끼는 공간으로 꾸몄고, 지하 전시장에는 한옥의 담벼락과 정자의 느낌을 살려 오밀조밀한 공간을 만들어 작품을 발견하는 재미를 선사했다. 색정적 그림만 모은 작은 방의 경우 창살 틈새로 은밀하게 엿보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간송미술관의 풍속화전에 나온 신윤복의 ‘월야밀회’. 밀회하는 남녀를 위해 한 여인이 망을 보고 있다. 간송미술관 제공
간송미술관의 풍속화전에 나온 신윤복의 ‘월야밀회’. 밀회하는 남녀를 위해 한 여인이 망을 보고 있다. 간송미술관 제공
김홍도의 ‘군선도’(국보 139호),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장승업의 ‘영모도’를 비롯해 ‘화성능행도’ ‘환어행렬도’ ‘오재순 초상’ 등 뛰어난 작품이 즐비하다. 왕과 왕실 인물이 행차하는 내용이 담긴 ‘동가반차도’는 명료한 필선, 세밀한 표현, 다양한 색감으로 완성된 수작. 김홍도의 그림으로 전해지는 ‘금계도’는 왜인이 바친 그림을 모사한 듯 화려함이 눈길을 끈다.

홍라영 총괄부관장은 “돋보기가 없으면 감상하기 힘든 그림도 디지털 장비를 활용해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다”며 “고미술을 낯설어하는 사람들도 전통회화를 쉽고 재미있게 접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소박한 전통의 아취

옛 모습을 간직한 간송미술관에서 열리는 ‘풍속인물화대전’은 진경 풍속화를 개척한 겸재 정선, 풍속화의 시조로 꼽히는 조영석, 이를 찬란하게 꽃피운 김홍도 신윤복의 걸작을 망라한 전시다.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최완수 실장은 “문화를 식물에 비유하면 이념은 뿌리, 예술은 꽃이라 할 수 있다”며 “중국 주자학에서 조선 성리학 이념으로 심화발전하면서 겸재를 필두로 우리 풍속을 그린 진경풍속화가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낚시를 소재로 했지만 중국 화보를 답습한 이명욱과 겸재의 ‘어초문답’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것도, 아버지 신한평에 이어 화원이 된 신윤복이 권문세가 자제와 어울리며 그린 풍속화에서 당시의 생생한 풍류문화를 엿보는 것도 흥미롭다. 두 사립미술관의 격조 있는 전시가 보고 또 봐도 좋은 고서화의 매혹을 일깨운다. 옛 그림을 통해 살아있는 역사와 소통하는 즐거움이 각별한 자리인 만큼 올가을 놓치면 아쉬운 전시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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