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유인원을 연구하다 만난 내안의 유인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1일 03시 00분


◇ 과학하는 마음 ‘숲의 심연’편 ★★★★

첨단 생명과학의 연구 성과를 극화하는 ‘과학하는 마음’ 연작의 네 번째 작품 ‘숲의 심연’편. 한국말이 어눌한 외국인 유인원관리사 라울(마두영)이 침팬지와 보노보, 고릴라의 집단 구성의 차이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바나나문프로젝트 제공
첨단 생명과학의 연구 성과를 극화하는 ‘과학하는 마음’ 연작의 네 번째 작품 ‘숲의 심연’편. 한국말이 어눌한 외국인 유인원관리사 라울(마두영)이 침팬지와 보노보, 고릴라의 집단 구성의 차이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바나나문프로젝트 제공
연극이 시민의 오락거리에만 머물러선 안 되고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했던 게 브레히트였던가. 그렇다면 21세기 시민교육을 위해 연극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일본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히라타 오리자는 이를 과학에서 찾는다.

그의 ‘과학하는 마음’ 연작은 유전자공학, 영장류 연구, 뇌과학 등 최신 생명과학의 연구 성과를 연극으로 풀어낸다. 복잡한 이론과 용어가 등장하는 첨단과학과 관객의 직관에 호소하는 연극은 자칫 상극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과학하는 마음’은 관객이 그 분야의 초심자라도 충분히 쫓아올 수 있을 만큼 쉽게 과학을 풀어낸다.

이 연작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은 전공이 제각각이다. 여러 전공이 얽힌 복합연구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의 전공 분야를 가르치고 배우며 정보를 교환한다. 관객은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면서 지식과 정보를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내용도 일반 강의보다 훨씬 쉽다. 대상을 초심자에 맞추고 다양한 비유와 예를 들어 설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객이 진짜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거침없이 질문하고 답하기에 더욱 흥미진진하다.

그 네 번째 작품인 ‘숲의 심연’편은 인간을 닮은 원숭이, 즉 유인원을 다룬다. 유인원은 네 종류가 있다.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 오랑우탄이다. 연극은 이들의 차이점에 초점을 맞춘다. 문제를 권력게임으로 푸는 침팬지와 섹스놀이로 풀어내는 보노보의 극명한 대비에서 출발한다. 침팬지는 왜 어린 새끼를 죽이는 유아살해를 저지르고, 보노보는 왜 상대를 가리지 않고 난교(亂交)를 펼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여러 가지 추론을 함께 제시한다.

그것은 단지 동물에 대한 질문에만 멈추지 않는다. 그들과 너무도 닮은 우리 자신, 인간에 대한 질문으로 발전한다. 사실 모든 ‘과학하는 마음’ 연작은 하나로 귀결된다. ‘인간은 왜’라는 질문이다. 과학은 그 질문을 끌어내기 위해 인간 스스로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이런 거울효과는 이들 연작의 독특한 형식을 통해서도 발현된다. 이들 연작은 여러 명의 과학자가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해 일상의 우리처럼 서로 동시다발적 대화를 나눈다. 특별히 극적인 사건 없는 일상에 현미경을 갖다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 일상 뒤에 숨은 미묘한 관계가 서서히 드러난다. 과학연구에만 몰두할 것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서열과 경쟁, 따돌림과 외로움, 구애와 실연, 집착과 상실이 교차한다. 그것은 그들의 연구 대상인 유인원의 특징과 고스란히 겹친다.

연출가 성기웅 씨가 이끄는 제12언어 연극 스튜디오는 2006년부터 ‘과학하는 마음’ 연작을 꾸준히 무대화해 왔다. 이번 작품에선 처음 한국적 상황으로 번안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정부의 연구기금 축소로 한국학자들이 아프리카 콩고에 있는 일본 영장류연구소를 인수해 운영한다는 ‘깜찍한 발상’ 아래 등장인물과 상황을 한국화했다.

히라타 오리자 연극의 특징은 스타일과 주제의 반복이다. ‘숲의 심연’편은 형식뿐 아니라 내용에서도 ‘북방한계선의 원숭이’편과 ‘발칸동물원’편을 닮은 요소가 많다. 특히 자폐아를 둔 엄마의 간절한 모성애와 유인원 생체실험에 대한 거부감 사이의 윤리적 갈등에서 이는 두드러진다.

하지만 그 반복은 심화를 낳는다. 특히 자식을 잃은 엄마(이지하), 자식을 구하려는 엄마(이지현), 자식을 임신한 엄마(전수지) 등 세 명의 여인이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는 고릴라의 ‘드러밍’으로 동병상련을 나누는 마지막 장면에선 전작에서 느끼지 못했던 묵직한 감동이 전해졌다. 보통 20명 안팎이 출연하던 배우가 8명으로 압축되면서 연기밀도가 높아진 것도 그 심화에 한몫을 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16일까지 서울 대학로 정보소극장. 2만∼2만5000원. 02-764-7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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