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성인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인터넷을 통한 음란물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이 때문에 음란물이 성범죄를 부추기지 않을까 걱정도 든다. 음란물의 증가와 성범죄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는가.(kejd***)》
음란물이 성범죄 증가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는 연구는 많았다. 덴마크 범죄학자 베를 커친스키는 1970년부터 1995년 사망할 때까지 25년간 사회전체의 음란물 증가와 성범죄 간의 관계를 연구한 뒤 “음란물 증가는 성범죄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 행해진 밀턴 다이아몬드의 연구 역시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대상 샘플을 선정해 더 구체적이고 심도 깊은 인식과 행동을 조사한 연구들에서는 다른 결론이 나왔다. 캐나다의 말라무스 연구에서 “음란물을 많이 본 남자일수록 성폭행에 대한 잘못된 통념, 여성에 대한 폭력 및 변태적 성행위에 대한 허용도가 높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 대표적이다. 실버트와 파인스의 연구에서는 성매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범 대부분이 자신이 본 음란물을 언급하며 “여성이 실제로는 성폭행 피해를 즐긴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카터와 프렌트키 등이 38명의 강간범과 26명의 아동 성폭행범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모두가 음란물을 ‘매우 자주’ 봤으며 범행 직전 혹은 범행 도중에 집중적으로 음란물을 봤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에는 음란물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이 많이 연구되고 있다. 2009년에 행해진 알렉시와 프렌트키의 연구 등 많은 연구에서 음란물을 자주 접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그렇지 않은 또래에 비해 공격성이 높고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성적 일탈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리하자면, 사회 내에 음란물이 증가한다고 해서 성범죄의 총량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음란물은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성매매와 성범죄 충동을 가진 자들에게는 범죄행위를 촉발하는 방아쇠 같은 역할과 성폭력의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지침서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 휴대용 기기를 통해 전파되는 음란물 동영상의 표현 수위는 과거보다 훨씬 높아져 자극에 취약한 청소년과 범죄적 충동을 가진 이들에겐 총보다 위험한 흉기가 될 수도 있다.
미국에서 헌법 수정 제1조가 ‘표현의 자유’이고 이와 관련해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소송이 포르노산업의 대부 ‘래리 플랜트’ 사건이었음은 유명하다. 국가가 성도덕 타락을 문제 삼아 음란물에 대한 무차별적 단속을 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이끌어 낸 역사적 재판이다. 하지만 이후 미국 정부는 아동 및 청소년에게 미치는 음란물의 폐해를 입증한 연구들을 근거로 미성년자의 음란물 접속을 차단하는 법적 기술적 행정적 제재장치를 공고히 마련했다. 또 아동 대상 음란물이 아동 성폭력을 부추기는 폐해를 구체적으로 지적해 아동의 누드나 아동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내려받는 행위도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고 있다. 이러한 최근의 입법은 ‘온라인 아동보호법(Child Online Protection Act)’으로 불리며 유럽과 호주 등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성폭력, 특히 아동과 장애인 등 성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미성년자의 음란물 접속이 자유롭고 아동 포르노물에 대한 규제장치가 미흡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 범죄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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