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양한 그림들을 접한다. 이미지에 불과한 그림은 짧게는 1초 안에, 늦어도 수 초면 충분히 시각을 통해 그 느낌을 전달받는다. 그럼에도 보통의 사람들이 전시장의 그림 앞에 서면 ‘이미지의 벽’에 막힌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 현대적이거나 추상일수록 그렇다. 사람들은 미술품이 인간의 지적, 감정적 활동의 소산이라 생각해 퍼즐을 풀듯이 안을 들여다보려 애쓴다. ‘저간의 사정’, 즉 미술사에서부터 그 작품을 만든 작가의 주관이나 의도 등을 알아야 속이 시원해진다. 명함에 이른바 ‘아트 스토리 텔러’, ‘그림 이야기꾼’이라는 직함을 달고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있다. 창작 양식에서부터 작가를 둘러싼 시공간에 이르기까지 관련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풀이해주는 사람. 미술평론가 이주헌 씨(50)다. ‘지식의 미술관’ 등 30여 권의 저술을 통해 미술의 대중화에 상당한 기여를 했고 지금도 명성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가 미술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는 사진의 힘이 컸다는 얘기를 듣고 경기 파주시 헤이리 한 카페에서 만났다.》 미술과의 인연이 깁니다.
“어릴 때부터 미술을 접했어요. 학생 때는 줄곧 미술부 활동을 한 만큼 대학도 당연히 미대에 갔습니다. 그래서 미술을 잘 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언론사 생활을 하다가 미술평론을 시작했는데 막상 글로 쓰려니 그제야 부족함을 알겠더군요. 미술을 학문적으로 잘 아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경험적으로 알았던 거죠. 몸에 녹아있지만 체계적으로 남들에게 풀이하는 지식이 모자랐습니다. 그렇다고 정규과정을 다시 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어요. 혼자서 이런저런 책을 보다가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직접 가서 작품들을 하나씩 보면서 공부하는 쪽을 택했어요. 미술은 이론적으로 잘 안다고 해도 작품을 제대로 보고 느끼는 과정이 없으면 반쪽 지식이잖아요. 알고 있던 지식을 재삼 확인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책을 쓰면서는 항상 독자들의 관심, 우리 사회의 문화적인 관심의 변화를 생각하면서 실험적으로 접근했고요.”
‘저자’로서 ‘그림 이야기꾼’으로서 미술 대중화의 전도사로 불리는데….
“일단 학문적인 데 초점을 두지 않고 ‘사람들이 이런 그림을 보면서 뭘 알고 싶어 할까’에 초점을 두다 보면 저절로 이야기꾼이 돼요. 미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은 미술 그 자체에 관심이 있겠지만 대중은 꼭 그렇지 않아요. 미술 작품에서 자기 삶을 이해하고 시대나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데에도 관심이 많아요. 따라서 저는 작품을 설명할 때 작품과 관련된 인문학적 연결고리를 찾아줍니다. 그림 자체를 설명할 때도 저 화가가 저런 색깔을 썼을 때, 이렇게 붓을 놀렸을 때의 심리 같은 것을 읽으려 애씁니다. 어떤 때는 작품에 대한 아무런 자료나 근거가 없어도 그림을 그려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잡아내 확신을 갖고 쓰죠. 이런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다 보니 독자들이 이해하기 수월하다고 얘기해 주시는 것 같아요.”
사진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입니까.
“오래전 집에 올림푸스 아날로그 카메라가 있었지만 카메라에 적정 노출표를 붙여 놓고 그대로 찍는 정도였어요. 몇 해 전부터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면서 지금은 ‘올림푸스 펜’만 2대 사용합니다. ‘올림푸스 펜’이 작지만 성능 면에서 제 작업에 무난한 것 같아요. 아직도 자동기능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고요. 카메라로 사진을 꾸준히 찍긴 했지만 작품사진을 찍는 개념이 아니라 주로 직업상 저한테 필요한 사진들을 많이 찍었습니다.”
주로 어떤 사진들인가요.
“사진에 대한 제 관심사는 가족사진, 제 직업상 필요한 사진, 그리고 영감을 주는 뭔가를 보았을 때 찍는 사진이 있어요. 가족사진은 시간이 지난 뒤 보면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 줍니다. 세계 미술관의 모습과 미술작품들은 제가 책을 쓰거나 강의를 할 때 요긴한 자료가 됩니다. 그리고 영감을 주는 소재, 숲, 하늘, 건물 벽, 색깔, 빛, 굴곡, 공간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찍어둡니다. 작품이 아니더라도 이런 것들은 미술평론가인 저에게 미적 감수성 유지에 도움을 줍니다.”
미술 관련 사진은 나름의 찍는 방법이 있나요.
“제가 미술과 관련한 저술 위주의 활동을 하다보니 가능하면 독자들이 책에 실린 사진을 잘 알아보게끔 찍어야 합니다. 방법은 노출을 잘 맞추고 사진을 통해 공간이면 공간, 정물이면 정물이 책 속에서 분명히 인식되도록 찍는 것입니다. 화면의 구성이나 구도에도 신경을 많이 씁니다. 미술관은 사진촬영을 허용하는 곳, 플래시 사용만 금지한 곳, 아예 못 찍게 하는 곳 등 다양합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쑥스러움을 극복해야 할 것 같아요. 남의 눈을 의식하다 보면 왠지 부끄럽고 어색해요. 한번은 몸싸움까지 하며 사진을 찍었는데 확실히 앵글이 좋더군요. 하지만 늘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요. 가장 재밌게 나오는 사진은 가족사진 같아요. 가족끼리는 친밀감이 있으니까 이런 저런 포즈를 부담 없이 요구하다 보니 다양한 모습이 나와요. 언젠가 딸아이가 사진 찍는 것을 의식하지 않도록 파인더를 보지 않고 위 아래로 이리저리 셔터를 눌러보았어요. 눈높이에 익숙한 우리에게 높낮이가 틀린 다양한 앵글 역시 신선한 느낌을 주더군요. 저는 사진을 편하게 생각하고, 재밌게 찍고 즐기려 해요.”
사진으로 사물을 보는 것과 그림으로 그려진 사물을 보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기계를 통한 이미지 포착과 손으로 그리는 그 차이는 있겠죠. 하지만 둘 다 이미지로 사물이나 사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점에서 같아요. 따라서 실용성을 떠나 예술적 관점에선 다 같은 미술작품입니다.”
사진에 대한 직업적인 감상자이기도 합니다.
“현대 미술에는 사진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요. 갤러리 관장을 할 때 사진전시회도 해봤고 리뷰를 쓴 적도 있어요. 단, 미술평론가로서 미술 작품의 연장선상에서 사진을 감상합니다. 작품 자체가 예술로서 우리에게 얼마나 강렬하게 호소해 오는가를 보는 것이죠. 제가 사진을 잘 찍을 줄도 모르고 기술에 대해서 무지하더라도 이미지에 대한 친근함은 있어요. 미술평론가로서 나름대로 이미지에 대한 감수성과 관점이 있는 것이죠. 우리가 작품을 감상할 때 전문가들의 지식이나 주의, 주장 같은 것을 감안해서 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본인의 느낌이고 그것이 모든 감상의 출발점입니다.”
미술은 사진의 탄생과 활용에 이르기까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결고리가 있다. 따라서 미술전문가인 그의 식견을 통해 계속 현대 사진의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사진과 미술은 복잡 미묘한 관계입니다.
“서양미술은 사실묘사 위주로 발달했어요. 좀 더 정밀한 묘사를 위해 화가들은 카메라 옵스큐라(암상자·바늘구멍 원리를 이용하여 어두운 상자 안에 상이 맺히게 하는 도구)를 만들었는데 바로 화가들의 눈이 되었어요. 투시 원근법(근경과 원경이 한점에서 퍼져나가는 형태의 투시법)적 표현이 가능해진 것이죠. 또 사진이 발명되자 초상화가들이 사진도 찍었는데 자신이 그리던 초상화처럼 사진을 찍었어요. 그 당시 인물사진을 보면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런 연유죠. 그렇지만 화가가 아무리 정교하게 그려도 사실묘사에서는 결국 사진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후 그림은 사실적 묘사보다는 추상미술에서 보듯 순수조형의 가능성을 확대하는 쪽으로 개념을 확장하게 됩니다.”
사진이 그림의 사조에 영향을 끼친 예가 있나요.
“많지요. 일례로 인상파에도 영향을 끼쳤어요. 인상파 화가들은 1839년 다게레오타이프(은판 사진법)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사진기가 이미지를 포착하는 과정이 빛을 포착하는 것이란 걸 알았어요. 따라서 사물보다는 빛을 표현하는 데 관심을 가졌어요. 빛의 순간적이고 찰나적인 인상을 표현하기 위해 붓질은 거칠어졌고 그만큼 형태도 해체되었지요. 모네는 여러 장의 ‘루앙 대성당’ 연작을 그리면서 오전, 오후, 사시사철의 빛을 다 다르게 표현했어요(사진1). 사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인식할 수 없는 부분이죠. 드가는 ‘르피크 자작과 딸들’에서 보듯 허리 아래쪽 부분은 잘라 버렸어요(사진2). 고전회화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사람을 촬영한 스냅사진에서 흔히 보이는 형태죠. 실제로 드가는 사진 촬영을 즐겼고 사진의 찰나성을 그림에 적극 활용했어요.”
우리 사진이 미술작품으로 인식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우리나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들어오면서 탈 장르, 크로스오버 현상이 생겨났어요. 살롱사진을 벗어나던 1980년대부터 사진가들 중 작가의식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요.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오면서 미술과 사진이 서로 혼융되는 상황도 있었어요. 지금은 사진으로 그림을 그리는(making photo) 시대가 되었습니다.”
일부 사진가들은 그런 사조(making photo)가 사진의 사실성, 역사성을 무시한 까닭에 일시적 유행이 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합니다.
“사진이 사진 본연의 특성을 살려서 작품을 만드는 것은 그것대로 가면 됩니다. 그렇지만 사진이 이미지를 다루는 예술로서 자유롭게 이미지를 전개할 수 있다면 새로운 가능성과 미학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순수 회화작품에 사진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거나 사진처럼 그린 그림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미술이든 사진이든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기 때문에 사진에 오히려 긍정적입니다.”
사진은 태생적으로 복제를 허용합니다. 현대 사진작품들이 에디션 넘버를 붙이는데 원본 파일의 처리는 이슈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사진은 작품이 아니면 원본의 개념이 약합니다. 미술에서 사진과 유사한 사례로 판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판화는 일정 수량을 인쇄한 뒤, 판을 파괴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아니면 어떤 표식을 해서 다시 찍었을 때 그것이 원본이 될 수 없도록 합니다. 원본을 보관하는 화가들도 있는데 작가의 사후에 미술시장에 혼란을 주는 경우를 봅니다. 사진도 그런 경우를 참고하면 됩니다. 디지털 파일은 판도 아니고 작가 입장에서는 그것을 없애는 것이 아까울 수 있는데요. 법으로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작가의 선의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미술 컬렉터나 시장의 입장에선 다시 찍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그 작가의 작품가격을 높게 평가할 수 없겠죠.”
그는 지식과 경험이 잘 어우러진 미술평론가다. 따라서 그의 논리는 탄탄하다. 앞으로도 저술활동을 통해 더 많은 지식과 미술 현장의 경험을 책에 녹여낼 것이다. ‘미술 이야기꾼’인 그의 얘기를 듣고 미술계의 저변이 더욱 넓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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