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출판도시서 특별전 여는 이상영 씨
헤세의 안경…카뮈의 친필 편지…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초판본…
히틀러 부관에게 헤세 책도 사들여
경기 파주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1층 전시장의 헤밍웨이 조각상 옆에 앉아 있는 이상영 씨. 그는 “헤르만 헤세의 친필 편지만 700여 점이 있다”며 “편지와 그림 등은 작품 이면에 깔린 작가의 심리를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파주=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헤르만 헤세(1877∼1962)가 쓰던 안경과 타자기,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친필 편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노인과 바다’ 초판본….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108명(1901∼2011년)의 친필 편지와 유품, 초판본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30일까지 경기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리는 ‘노벨문학상 110주년 특별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문학 세계와 예술혼을 보여주는 자료 11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헤르만 헤세의 안경.이 자료들은 전직 번역가이자 고서 수집가인 이상영 씨(59)가 40여 년 동안 모은 것이다. 파주출판도시에서 만난 이 씨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와 관련된 소장품 6000여 점 중 의미가 있는 것을 추려 전시했다. 귀한 자료를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이 씨는 6일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시인의 초판 시집 여섯 권을 구입하기도 했다.
알베르 카뮈의 친필 편지.그가 노벨문학상 관련 물품 수집가가 된 것은 헤르만 헤세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됐다. 1970년 대학 영문과 1학년생이던 그는 ‘타임’지에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히피들이 헤세의 ‘슈테펜볼프(황야의 이리)’를 들고 시위한다는 기사를 우연히 접했다. “헤세 하면 데미안밖에 몰랐는데, 이 책이 히피들의 바이블로 추앙받는다고 하니 흥미로웠어요. 책을 찾아 읽었는데, 마약, 혼음 등이 난무하는 내용이 좋았던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끌렸어요. 이후 용돈이 생길 때마다 서울 명동에 있는 외서 전문책방에 가서 헤르만 헤세 원서를 모으기 시작했죠.”
장 폴 사르트르의 판화 작품. 사르트르는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됐지만 본인이 수상을 거부했다. 파주북소리 사무국 제공군대를 다녀온 후 번역가로 활동하던 그는 1980년대 초 독일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헤세가 1936년 그린 수채화 ‘몬타뇰’을 접하고는 매료돼 180만 원을 주고 구입했다. 이후 헤세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면서 헤세의 가족 및 관계자들과도 친분을 맺었다. 헤세의 둘째 아들인 하이네 헤세는 여섯 번 찾아가 다섯 번 거절당한 후 겨우 만났다.
“한 번은 히틀러의 부관이었다는 노인이 찾아왔어요. 히틀러가 헤세 책을 태우라고 명령했는데, 태우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며 팔고 싶다고 하더군요. 여러 권을 샀죠.”
현재 이 씨가 보유한 헤세 자료는 친필편지와 그림 등을 포함해 1850여 점. 이렇게 자료를 수집하면서 그는 희귀본 책을 모으는 컬렉터들과 친분을 쌓았고, 다른 유명 문학인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됐다. 노벨문학상 작가들의 초판본이나 각종 유품, 부고기사가 실린 신문이나 잡지 등을 모으기 시작했다.
“자료는 경매보다 주로 작가의 가족이나 관계자, 친분이 있는 컬렉터 등을 통해 얻지요. 유럽인들은 ‘장사치가 아니라 진정한 컬렉터’라는 명분만 있으면 경매가의 10분의 1, 심지어 100분의 1에도 작품을 내놓습니다.”
그는 자신이 보유한 자료의 가치가 경매가 기준으로 400억 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세 곳에 나눠 보관하고 있다. 2000년부터 여러 지자체와 헤세 및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박물관을 세우려 했으나 진행이 되다가도 단체장이 교체될 때마다 건립이 무산됐다고 한다. 그는 “이젠 지자체에 의존하지 않고 사비를 들여 작은 규모라도 내년 초 박물관을 꼭 세우겠다”고 했다.
“인문학에 대해 젊은 층의 열정이 뜨겁다는 걸 이번 전시를 하면서 느꼈어요. 이들에게 헤세를 비롯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각종 자료들은 영감을 주는 촉매제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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