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가 한국 구상조각의 거장 최종태 씨(79)의 ‘구원(久遠)의 모상(母像)’전을 11월 13일까지 열고 있다. 4년 만의 개인전으로 오방색과 민화에서 영향받은 채색 나뭇조각, 요즘 푹 빠져있는 수채화를 중심으로 브론즈, 돌조각 등 60여 점을 선보였다.
줄곧 사람을 조각하면서 삶의 근원과 인간 내면을 파고든 팔순의 작가는 전시장을 둘러보며 “이번엔 컬러가 특징”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완전한 나무를 찾을 수 없어 아크릴 물감을 색칠한 것이 그림과 조각의 재미를 두루 선사하는 작품으로 발전했다.
그는 한국 미술의 대세가 추상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구상조각을, 그중에서도 소녀와 여인을 주제로 작업해 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숱한 성모상을, 법정 스님과의 각별한 인연으로 길상사 관음보살상도 제작했다. 이런 고집스러운 인체 탐구는 서구의 추종이 아니라 장승의 고졸함, 불상의 숭고미가 어우러진 예술로 꽃폈다.
“뒤를 돌아보니 여인만 만들었다. 그래서 늘 현대미술의 변방에 머물렀으나 내겐 여성적인 것, 그건 전쟁과 폭력이 아닌 결국 사랑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도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는 말이 나온다.”
그의 인생은 예술과 종교에 대한 탐색의 여정과 겹친다. 조각가 김종영, 화가 장욱진은 여전히 그리운 스승이다. “자기를 가혹하게 다스리는 사람이 남에게 관대하다”고 말한 김종영, “남과 비교하지 마라, 너는 너대로 사는 것”이라고 말한 장욱진의 가르침은 삶과 예술의 나침반이 돼주었다. 두 스승이 타계한 뒤엔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과 깊은 교유를 나누었고 작업은 더욱 깊어졌다.
“50여 년간 예술이 뭔지, 조각이란 뭔지를 찾기 위해 동서고금을 공부했고 세계를 헤맸으나 얼마 전 문득 깨달았다. 답이 저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가슴을 툭툭 치며) 바로 여기 있다는 걸….”
진정한 내면이 깃든 좋은 얼굴을 만드는 것이 그의 바람이고, 좋은 사람이 좋은 작품을 남긴다는 것은 그의 믿음이다. 노작가는 “난 아직 예술가는 안 됐지만 경쟁에선 자유로워졌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갈 데까지 가보는 것이 내 숙명”이라고 말하곤 한다.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노년의 겸허함. 그에게 삶과 예술은 온전히 하나다. 여인상의 맑고 고요한 얼굴들이 그렇게 말한다. 02-7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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