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표류기 문학의 백미로 손꼽히는 ‘표해록(漂海錄)’을 쓴 장한철(1744∼?)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표해록상징조형물설립추진위원회(위원장 장시영·90·삼남석유 회장)는 25일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 한담공원에서 장한철을 기리는 기념비를 제막했다. 이 기념비는 높이 5m, 폭 2.5m로 ‘장한철 선생 표해기적지’라고 새겨져 있다.
표해록은 1770년 12월 장한철이 서울에서 열리는 회시에 응시하기 위해 배를 타고 나갔다가 거친 풍랑을 만나 표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장한철 일행은 모두 29명으로 일본 오키나와(沖繩)까지 흘러갔다가 중국 상선을 얻어 타고 돌아오다 상선의 안남(安南·지금이 베트남) 선원들에게 쫓겨나 또다시 표류하다 가까스로 전남 완도군 청산도에 도착했다. 목숨을 건진 일행은 8명에 불과했다. 이 표해록은 표류의 두려움, 고향에 대한 향수, 모험심 등의 감정이 잘 드러난 표류기로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선 후기 야담집인 ‘청구야담’ 등에 반복적으로 실리는 등 작품인지도와 인기가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표해록은 1939년 동아일보 한시 공모전에 제주 출신 장한규(1880∼1942)의 ‘금강산기’가 장원으로 뽑히자 이를 본 장한철 직계 후손과 연락이 닿았다. 장한규는 이들과 소식을 주고받다가 표해록의 실체를 전해 듣고 우편으로 받았다. 표해록은 장한규의 손자뻘인 장시영 위원장(장한철의 8대손)에게 넘겨졌다가 2001년 국립제주박물관에 소장됐다. 표해록은 1959년 제주에서 학술조사를 하던 고 정병욱 서울대 교수가 확인한 뒤 학계에 발표하면서 빛을 봤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