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지교를 꿈꾸며]연출가 조광화 - 무대디자이너 정승호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7일 03시 00분


‘도발적 무대’ 의기투합… “상상력 싱크로율 100%”

무대디자이너 정승호 씨의 스카프로 짓궂은 장난을 치고 있는 연출가 조광화 씨(왼쪽). 두 사람은 무대 작업에선 둘도 없는 ‘솔 메이트’를 자처하지만 사진과 달리 일상에선 서로를 깍듯이 ‘선생’이라고 호칭하는 사이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무대디자이너 정승호 씨의 스카프로 짓궂은 장난을 치고 있는 연출가 조광화 씨(왼쪽). 두 사람은 무대 작업에선 둘도 없는 ‘솔 메이트’를 자처하지만 사진과 달리 일상에선 서로를 깍듯이 ‘선생’이라고 호칭하는 사이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올해 9월 남산예술센터의 최대 흥행 기록을 세운 연극 ‘됴화만발’, 2009년 더 뮤지컬어워즈 무대상을 수상한 뮤지컬 ‘남한산성’, 2008년 한국뮤지컬대상 최우수작품상, 극본상, 무대미술상 등 6개 부문에서 수상한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세 작품 모두 독창적인 무대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았던 공연이다.

이 세 무대는 극작가이자 연극연출가인 조광화 씨(46)와 무대디자이너 정승호 씨(44)의 환상 호흡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25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몽롱한 뇌를 갑자기 활발하게 만드는 각성제 같은 존재”(조광화) “말을 나누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함께 일할 맛 나는 사람”(정승호)이라고 평했다.

조 씨는 둘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억했다. “동서양의 분위기가 조합된 기괴한 기계들이 등장하는 블록버스터 연극 ‘프랑켄슈타인’을 몇 년째 구상 중이었는데 2007년 LG아트센터에서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압도적인 무대를 보게 된 거죠. ‘이걸 누가 만들었지? 이 사람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사람이 정 선생이었어요.”

그로부터 얼마 뒤 조 씨는 ‘내 마음의 풍금’ 연출을 맡았고 무대디자인을 정 씨에게 부탁했다. 평소 ‘어두운 색깔’의 조 씨 공연을 좋아했던 정 씨도 흔쾌히 응했다. 하지만 둘의 만남은 처음부터 삐걱댔다. 조 씨는 원작소설에 걸맞게 1960년대 초반 남루하고 궁핍한 느낌의 아날로그적 무대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정 씨가 살구색의 모던하고 동화 같은 무대 아이디어를 들고 와 의견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씨는 “원래 자료 조사를 하면서 무대디자인을 오랫동안 구상하는 편인데 이때는 무대에 대한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통으로’ 쏙 들어왔고 그런 적이 처음이라 양보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연극계의 고집불통으로 유명한 조 씨도 정 씨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통념을 깨는 참신한 무대디자인이 ‘내 마음의 풍금’에 대한 호평의 원동력 중 하나가 됐다. 조 씨는 “내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상상력이 활발해지는 경험을 처음으로 했다”고 말했다. 이후 두 사람은 ‘싱크로율 100%’인 이심전심의 관계로 발전했다.

‘남한산성’ 무대의 백미로 꼽는 인형의 사용은 인조가 머리를 찧으며 절하는 청태종 홍타이지를 대형 인형으로 대체해 보자는 정 씨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조 씨가 이를 듣고 더 발전시켜 인형이 대거 등장하도록 대본을 수정했다.

‘됴화만발’에서 극 후반부 무대바닥이 뚜껑처럼 열리는 입체 무대는 두 사람의 합작품. 정 씨가 무대를 바닥에 띄워 보자고 아이디어를 내자 조 씨가 ‘상여’로 형상화할 것을 주문했고 등장인물이 무대의 구멍을 통해 들고나는 무대 개발로 이어졌다. 조 씨는 “아이디어가 탁구공처럼 오가면서 명확하고 선명하게 구체화됐다”고 말했다.

정 씨가 연극과 교수로 재직 중인 서울예대에 조 씨가 올해 초 극작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더 깊어졌다. 이번 학기에는 두 사람이 ‘연극제작실습’ 과목을 함께 맡아 가르친다. 학생들은 두 사람의 성을 따 과목명을 ‘조정 제작’으로도 부른다.

무대 작업과 관련해선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생산적인 관계지만 일상에서 두 사람은 적당히 거리를 두는 ‘쿨’한 사이다. 조 씨가 다혈질이고 정 많은 ‘의리의 사나이’라면 정 씨는 연극판에선 드물게 이성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이다. 조 씨는 “기질도 성향도 문화도 서로 다른 지금이 좋다. 서로 막 섞여 버리면 작업에서 이만큼의 시너지가 안 날 것 같다”며 웃었다.

두 사람은 현재 차기작으로 ‘프랑켄슈타인’을 구상하고 있다. 두 사람에게 ‘됴화만발’은 이 작품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같은 작품이다. 조 씨가 “내년 안에는 대본을 쓸 거다. ‘됴화만발’보다 스케일이 더 크고 굵직하게 갈 거다”라고 하자 정 씨는 “굉장히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졌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