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명품보다 개성! 어포더블 패션 강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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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8일 03시 00분


럭셔리 브랜드서 만든 착한 가격의 신상 밀물
희소성 높아 압구정-청담동 트렌드세터들에 어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웨스트에 최근 문을 연 ‘MM6’ 매장. 전위적 디자인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세컨드 브랜드로 세계 최초로 이곳에서 단독 매장을 열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웨스트에 최근 문을 연 ‘MM6’ 매장. 전위적 디자인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세컨드 브랜드로 세계 최초로 이곳에서 단독 매장을 열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어포더블 럭셔리(affordable luxury).’

‘감당할 수 있을 만한, 합리적 가격의 럭셔리’란 뜻이다. 해외 명품 브랜드 수준의 디자인을 기대하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을 걸치기엔 물리적,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울 때 떠올리는 프리미엄 브랜드. 또는 통상 중년 이상 고객들의 두툼한 주머니를 겨냥해 디자인된 디자이너 브랜드의 ‘젊은 버전’을 찾을 때 떠올리는 브랜드들이 어포더블 럭셔리에 속한다.

뭐든지 특별하고 별난 서울 강남에서도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압구정동에 올 가을겨울 시즌을 겨냥한 어포더블 럭셔리 브랜드가 대거 상륙했다. 유행의 첨병 역할을 하는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과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의 신규 브랜드들은 유명 브랜드의 세컨드 브랜드 개념으로 재탄생하거나 아예 국내에 처음 소개되면서 조심씩 압구정 패셔니스타들에게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올가을 국내에 처음 상륙한 스페인 브랜드 ‘호스인트로피아’의 의상. 호스인트로피아 제공
올가을 국내에 처음 상륙한 스페인 브랜드 ‘호스인트로피아’의 의상. 호스인트로피아 제공
‘세컨드’라 특별해요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웨스트 2층은 수입 브랜드의 안테나숍 기능을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압구정동 고객들에게 낙점을 받아 매출도 잘 나오는 브랜드들은 입소문을 타고 서울 전역과 지방으로 전파된다. 이곳에 최근 가을겨울 신상품으로 첫선을 보인 ‘MM6’는 다소 전위적이고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독창성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세컨드 브랜드다. 헌 옷을 이어 붙이거나 헌 옷처럼 보이게 디자인한 ‘섀비룩(shabby look·누더기 패션)’을 선보이는 등 항상 화제의 중심에 선 디자이너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2004년부터 ‘MM6’를 선보여 왔다. 지금껏 세계적으로 편집숍에 일부 제품을 입점하는 형태로 소개돼 온 ‘MM6’는 최근 갤러리아백화점 압구정점에 세계 최초로 단독 숍을 열었다.

최근 방문해 둘러본 이 매장의 아이템들은 무릎을 치게 만드는 기발한 디자인이 돋보이지만 막상 직접 구입하기엔 망설여졌던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컬렉션의 팬들에게 좋은 대안이 될 듯했다. 훨씬 더 실용적이고, 덜 튀는, 그러면서도 흔한 말로 ‘에지’가 있는 아이템들이 두 눈과 지갑을 유혹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매장을 연 ‘질샌더 네이비’ 매장과 유머와 재치가 엿보이는 ‘모스키노 칩앤시크’ 매장, 에스닉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스페인 브랜드 ‘호스인트로피아’ 매장. 모두 서울 강남구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웨스트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최근 국내에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매장을 연 ‘질샌더 네이비’ 매장과 유머와 재치가 엿보이는 ‘모스키노 칩앤시크’ 매장, 에스닉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스페인 브랜드 ‘호스인트로피아’ 매장. 모두 서울 강남구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웨스트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재킷 안에 덧댄 안감처럼 생겼지만 떼어내면 별도의 옷이 될 수 있는 2겹 재킷, 어깨 부분에 지퍼가 달려 조끼로 따로 입을 수 있게 한 스웨터는 “이봐, 나처럼 실험적인 디자인도 실용적일 수 있다고!”라고 외치는 듯했다. 액세서리도 돋보였다. 다리에 대는 부분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어 롱부츠로도, 앵클부츠로도 연출할 수 있는 구두, 파우치부터 중간 크기 가방, 큰 가방이 세 자매처럼 나란히 붙은 3단 가방 등은 당장 머릿속 ‘장바구니’ 코너에 넣고 싶을 정도였다.

같은 층에 자리 잡은 ‘질샌더 네이비’는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이곳에 둥지를 트게 된 ‘질샌더’의 세컨드 라인 매장이다.

지난 봄여름 시즌에 일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세계적으로 론칭한 이 라인은 ‘질샌더 메인 브랜드의 격조 높은 감각과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계승하면서 여성스러움과 보이시함의 조합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네이비’라는 색상을 브랜드 이름에 활용한 것은 이 색상이 상징하는 순수함과 간결함, 스포티한 느낌이 브랜드 철학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설명처럼 매장에서는 불필요한 디테일은 과감히 생략한 캐주얼한 상품들이 돋보였다. 허리를 날씬하게 조여 주는 오리털 패딩, 타이트한 스키니 팬츠에 곁들인 옥스퍼드화…. ‘질샌더’가 얼음공주 느낌이라면 ‘질샌더 네이비’는 얼음공주의 정 많은 동생 느낌이랄까. 물론 질샌더보다 평균 30%가량 낮은 가격대 때문에 좀 더 착한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지만.

영국 런던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모스키노칩앤시크’의 최근 컬렉션. 모스키노칩앤시크 제공
영국 런던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모스키노칩앤시크’의 최근 컬렉션. 모스키노칩앤시크 제공
역시 같은 층에 위치한 ‘모스키노 칩앤시크(Cheap and Chic)’ 매장은 들어서자마자 슬그머니 웃음부터 났다. 모스키노 칩앤시크는 메인 라인인 ‘모스키노’보다 젊은 20, 30대를 타깃으로 하고 가격도 50%가량 저렴한 세컨드 브랜드다. 엉뚱하고 반항기 있기로 유명한 브랜드 설립자 프랑코 모스키노의 정신을 반영하듯, 디자이너 브랜드에서는 금기어로 여기는 ‘싸다(cheap)’는 단어를 브랜드 이름에 사용한 용기가 일단 박수 받을 만하다. ‘싸지만 시크하다.’ 얼마나 간명하고 분명한 메시지인가. 디자인도 직접적이다. 밀라노 런던 파리 뉴욕 등 주요 패션 도시 4곳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올해 컬렉션은 대놓고 뉴욕과 파리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과 에펠탑, 런던의 명물인 빨간 전화 부스 등을 옷과 가방에 프린트했다.

국내 첫선 브랜드도 봇물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웨스트 2층에는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스페인 브랜드 ‘호스인트로피아’ 매장도 자리 잡았다. 20대 중반∼40대 중반을 타깃으로 한 ‘그린 라인’, 20대 후반∼40대 후반을 겨냥한 ‘실버 라인’ 등 나이대별로 세분된 컬렉션이 눈길을 끌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에도 어포더블 럭셔리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8월 ‘아돌포도밍게스’ ‘올라카일리’ ‘톰브라운’ ‘페트레이’ ‘아스페시’ 등의 브랜드 매장을 국내 최초로 열었다.

이 가운데 아돌포도밍게스는 1973년 론칭한 스페인의 토털 의류 브랜드다. 1997년 스페인 왕실이 수여하는 ‘황금바늘상’을 수상한 스페인의 대표 디자이너 아돌포 도밍게스가 이끌고 있다. 도밍게스는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Details)”며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된 ‘디테일이 강한 옷’을 표방하고 있다.

또 다른 브랜드인 ‘올라 카일리’는 유행에 치우치지 않고 세대를 초월한 ‘슬로&스테디 패션’을 표방하는 영국의 디자이너 브랜드다. 알렉사 청, 커스틴 던스트 등의 패셔니스타의 파파라치 컷에서 자주 등장하며 2011년 2월 영국의 명품 백화점 해러즈에 단독 매장을 열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현대백화점 측은 “이번 시즌처럼 국내 최초로 도입되는 브랜드를 한 번에 10개 이상 선보이는 것은 이례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2000년대 이후 해외 명품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값비싼 유명 브랜드들은 이미 국내에 다 들어와 있는 상황.

이에 ‘희소성’에 목매는 패셔니스타와 20대 초반까지 확대된 ‘엔트리 명품족’을 모두 잡기 위한 수단으로 패션업계와 백화점이 내건 카드가 어포더블 럭셔리였던 셈이다. 이 브랜드들의 성적은 곧 낱낱이 공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바로 여기, 압구정동에서.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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