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변화는 온대지방의 매력이자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물론 추위나 더위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연중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는 열대, 아열대의 고산지대를 좋아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가 없다면 삶이 얼마나 밋밋해질까.
○ 느티나무 단풍의 색은?
우리는 예로부터 계절의 변화를 즐겨왔다. 봄철 꽃놀이, 여름철 피서, 가을철 단풍놀이가 대표적이다. 단풍 하면 붉은 단풍나무와 노란색 은행나무가 유명하다. 그런데 우리 곁에서 멋진 단풍을 선사해 주면서도 정작 잘 알려지지 않은 나무가 하나 있다. 바로 느티나무다.
느티나무는 항상 우리 주변에 있으면서 그 넓은 품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축복의 나무다. 오래전부터 마을 어귀에 정자목(亭子木)으로 많이 심어서 이제는 노거수(老巨樹)로 보호되는 고목이 많이 있다. 논밭 가운데 심어 사람들이 더운 여름 그 그늘에서 땀을 식히기도 했다. 또 우리 전통가구를 만드는 목재 중에는 느티나무가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지금도 느티나무는 중부 지방에선 은행나무와 함께 가장 많이 심는 가로수이자 공원수다. 느티나무는 성장속도도 빨라 묘목을 심은 지 10년만 되면 제법 그럴듯한 부챗살 모양 수형을 만든다. 게다가 오래 살기까지 해 500년 이상 된 고목들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느티나무의 단풍 색은 무엇일까? 노란색, 아니면 빨간색? 정답은 둘 다 맞다. 느티나무 단풍은 노란색이나 빨간색, 또는 그 사이에서 다양한 편차를 보인다. 그래서 느티나무 숲은 단색이 아닌, 알록달록 예쁜 물이 든다. 빨간 단풍나무나 노란 은행나무 길도 멋지지만, 화려한 꽃 못지않게 알록달록한 느티나무 가로수 길도 보는 이의 경탄을 자아낸다. 팔자의 근무지 근처에는 박지성 선수를 기념하기 위한 박지성로(路)가 있다. 지금 거리 양쪽과 중앙분리대에선 느티나무 단풍이 한창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 진정 아낌없이 주는 나무
단풍이 든 느티나무 잎으로 만든 수리부엉이.흔히 단풍놀이라 하면 내장산이나 설악산 같은 명승지에 가는 것을 떠올린다. 그렇지만 먼 곳까지 가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그런 식의 단풍놀이는 자칫 ‘사람구경’이 될 우려도 있으며, 자연환경에도 큰 부담을 줘 곳곳의 국립공원들은 단풍놀이 후 몸살을 앓곤 한다.
필자는 주변의 공원에 가서 하는 단풍놀이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들과 함께 큰 돈을 들이지 않고서도 여유 있게 단풍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아이들과 알록달록한 잎으로 놀이를 하면 더 좋을 것이다. 이런 놀이는 아이들에게 자연에 대한 관심을 심어주고 감성을 키워준다.
필자가 10여 년간 대학에서 생활원예를 가르칠 때 개발한 놀이가 있다. 바로 느티나무 잎으로 수리부엉이를 만드는 것이다. 느티나무 잎에는 톱니 모양이 가장자리를 따라 가지런하게 있는데, 이것은 수리부엉이 같은 맹금류를 표현하기에 아주 적합하다. 캠퍼스 식물 탐방을 할 때 시큰둥하던 학생들이 이 놀이를 시키자 금세 수업에 흥미를 갖곤 했다.
먼저 예쁘게 단풍이 든 느티나무의 큰 잎 하나와 작은 잎 두개를 구해 보자. 큰 잎은 머리와 몸통이 되고, 작은 잎들은 날개가 된다. 큰 잎의 잎자루 위 3분의 1 정도 되는 곳 양쪽 가장자리에 칼집을 내 귀를 만든다. 잎을 접으면 머리와 몸통이 완성된다.
그리고 머리 위에 작고 동그란 회양목 잎(눈의 흰자위)과 까만 쥐똥나무 씨앗(눈동자)으로 부리부리한 눈을 만들어 붙여주자. 이어서 작은 느티나무 잎 두 개로 날개를 만들면 멋진 수리부엉이가 탄생한다. 회양목이나 쥐똥나무는 대부분의 공원에 어김없이 심어져 있다. 물론 다른 나무의 잎이나 씨앗을 써도 된다.
느티나무는 여름철 시원한 그늘과 고운 단풍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이런 잔잔한 즐거움까지 선사하는 진정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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