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영국 런던 베인브리지 경매에서 18세기 중국 황실 도자기가 973억 원에 팔렸다. 청나라 건륭제(乾隆帝) 때 만들어져 황실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아시아 예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로 남아 있다.
청의 제6대 황제인 건륭제는 1736년부터 1795년까지 재위하고 1795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179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의 일생 동안 청은 세계에 걸출한 세를 과시했다. 건륭제의 재위 기간에 청은 몇 세기 만에 크게 성장했고 그 시기에 정한 기본적인 국경의 형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군대는 강했고 백성은 생산적이었으며 문화도 융성했다. 수많은 책이 출간됐고 걸작품이 궁전과 부유층의 집을 장식했다.
하버드대 동아시아언어문명학과 교수인 저자는 현대중국의 기초를 다진 황제 건륭제의 삶과 그의 시대에 주목했다. 황제로서의 공적인 삶과 더불어 일상, 취미와 식습관, 심리묘사를 세심하게 기술했다.
건륭제는 학문과 예술, 문화를 사랑한 르네상스인이었다. 만주어, 중국어, 몽골어 등에 유창했고 중국, 티베트, 몽골, 만주의 문화에 정통했으며 샤머니즘, 불교, 유교, 이슬람교에 두루 관심을 갖고 똑같이 존중했다. 4만 수에 달하는 시를 직접 짓기도 한 건륭제는 방대한 분량의 사고전서(四庫全書)를 편찬하도록 했다. 여기에 군사적인 업적도 이뤄 ‘십전노인(十全老人·열 번의 완벽한 승리를 이룩한 노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건륭제는 자신의 이미지에 집착한 노회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장 매력적인 방식으로 그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냥과 전쟁을 즐겼지만 그는 서재에서 온화한 표정으로 손에는 붓을 잡고, 교양 있는 사인(士人)의 모습으로 묘사한 그림을 다량 제작하도록 했다. 고급문화의 후원자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8세기 국내에서 활약한 북학파는 건륭제 시절에 베이징을 방문한 뒤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는 그가 건륭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청나라를 방문하고 와서 쓴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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