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제나라에서 올바른 도리가 실행되지 않음을 보고 제나라를 떠나려고 했다. 이때 맹자의 행동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었다. 제나라 사람 尹士가 그중 한 사람이었다. ‘公孫丑(공손추)·하’ 제12장을 보면, 윤사는 맹자가 어리석은 사람이거나 간교한 사람일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유는 이러했다. 제나라 왕은 탕왕이나 무왕 같은 성군이 될 수가 없다. 그런데 만일 맹자가 그 사실을 모르고 제나라에 왔다면 맹자는 어리석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맹자가 그 사실을 알고도 제나라에 왔다면 맹자는 녹봉이나 특별한 이익을 얻으려 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맹자는 윤사의 이 비판에 대해 어떻게 반론할 것인가?
不可以爲湯武는 탕왕이나 무왕 같은 성군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탕왕이나 무왕은 無道한 군주를 征伐(정벌)했지만, 여기서는 정벌의 사실 자체를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다. 탕왕이나 무왕이 천명에 순응하고 인정의 순리를 따른 사실을 가리켜 말한 듯하다. 따라서 以爲湯武를 以爲堯舜(이위요순·요임금이나 순임금으로 되게 한다)으로 바꾸어 써도 무방하다. 不明은 도리를 모르고 앞가림도 못한다는 뜻이다. 其不可는 其不可以爲湯武의 줄임말이다. 然且至는 ‘그런데도 이르러왔다면’의 뜻이다. 干澤은 왕의 恩澤(은택)을 구한다는 뜻이다. 干은 구할 求(구)의 뜻이다. 干祿(간록)이라 하면 벼슬길에 나아가 녹봉을 구한다는 뜻이다.
윤사가 제나라 왕은 탕왕이나 무왕 같은 성군이 될 수 없다고 단정한 것은 근대 이전의 관념에서 보면 지독한 不恭(불공)의 말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당시의 군주에 대해 이렇게 단정한 적이 없다. 사대부들은 당시의 군주를 堯舜이 되게 하고 당시의 백성을 요순시대의 백성이 되게 하려고 盡力(진력)했다. 뜻과 현실이 어긋났을 때도 스스로를 반성했다. 하지만 근대 이후로는 이러한 군신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각계의 지도층은 시민이나 구성원의 냉엄한 비판을 받지 않도록 우선 처신에 유의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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