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노리카코리아의 위스키 브랜드 ‘시바스 리갈’은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호림아트센터에서 위스키 병에 예술을 덧입힌 재미있는 전시회를 선보였다. 이상봉 김서룡 송자인 이주영 홍승완 씨 등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 5인이 2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바스 리갈’의 이미지를 새롭게 재탄생시킨 것. 이 디자이너들은 본인이 직접 선정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해 냈다.
이들 가운데서는 특히 한글을 활용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이상봉 씨와 그의 ‘후배 디자이너’로 소개된 이청청 씨가 눈에 띄었다. 최근 발간된 책 ‘패션코리아, 세계를 움직이다’에서 주목할 만한 젊은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소개된 이청청 씨가 바로 이상봉 씨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이상봉 씨 부자는 일본의 입체작가 마쓰에다 유키와 함께 전통적인 단청 문양을 담은 위스키 병을 미래지향적인 느낌의 아크릴 박스에 넣은 작품을 선보였다.
‘이상봉 파리’의 제너럴 매니저(직함은 팀장)로서가 아닌 동등한 디자이너 자격으로 아버지와 함께 작업하기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는 이청청 팀장과 그런 그에게서 “기특한 가능성을 봤다”고 말하는 이상봉 씨. ‘닮은 듯 다른’ 이들을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이상봉 파리’ 본사에서 만났다. 동그란 검은색 뿔테 안경, 밑위 부분이 엄청나게 긴 팬츠 때문에라도 한 번쯤 돌아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튀는’ 아버지와 폴로 티셔츠, 캔버스 운동화로 평범하게 차려입은 ‘평범한’ 아들은 풍기는 이미지부터가 달랐다.
이청청이란 이름은 본명인가요. 본인 소개를 해주신다면….
이청청=“네, 맞아요. 여동생 이름은 ‘나나’예요. 원래 부모님이 자식 이름은 꼭 ‘나나’로 짓고 싶으셨는데 아들이 먼저 태어나니 ‘급조’하신 게 아닐까요.(웃음) 맑은 호수가 나온 태몽 때문이라고도 하시고…. 영국 센트럴세인트마틴칼리지 오브 아트&디자인에서 아트&디자인과 남성패션을 전공했어요. 지난해 친구와 공동으로 패션브랜드를 론칭했고 ‘복솔패션스카우트’가 주최한 패션디자이너 후원 프로그램에서 남성복 부문에 뽑혀 지난해 9월 런던 패션쇼에 처음 섰어요. 지난해 귀국해 ‘이상봉 파리’에서 제너럴 디렉터로 일하고 있고요.”
온 가족이 다 ‘이상봉 파리’ 관련 일을 하는 셈이네요.
이상봉=“네. 아내는 감사로, 딸은 뉴욕 첼시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제 컬렉션의 미국 내 PR를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아들이 대를 이어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는 걸 아버지가 바라셨나요.
이청청=“아니에요. 한국에선 잠시 역사교육을 전공하기도 했는데 결국 진로를 바꾸게 됐고요. 그 후론 패션경영 쪽을 생각했는데 역시 패션산업의 꽃은 디자인이라고 결론 내렸어요.”
이상봉=“사실은 아들보다는 딸이 디자이너가 됐음 했는데…. 여성한테 더 맞는 직업이다 싶어서요.”(웃음)
아버지가 감정 표현을 자주 하는 편인가요.
이청청=“음…. 와인 많이 드신 뒤 새벽 3시에 깨우실 때?(웃음) 아무래도 술 드시고 나면 감정표현을 많이 하시는 편이세요.”
이상봉=“나도 한국 아버지다 보니 무뚝뚝해요. 오히려 이렇게 인터뷰하니까 더 속 깊은 얘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은데?”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르침이 있다면….
이상봉=“제가 제 성을 영어로 ‘LEE’가 아닌 ‘LIE’로 쓰는 건 다르고 싶기 때문이에요. 전 아이들에게 ‘다르게 살아라’라고 얘기해요. 저는 술 한잔하고 물에 풍덩 뛰어드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향해요.”
이청청=“저는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실 때마다 오히려 ‘스탠다드’하게 살아야지 하고 생각했는걸요. 어렸을 땐 아버지가 이렇게 튀는 모습인 게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는데 같은 길을 걷다 보니 이젠 모두 이해해요.”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이청청=“이상봉 브랜드를 세계화하는 것. 디자이너가 사라지면 없어지는 브랜드 말고, 후대까지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드는 게 제 꿈이에요. 그걸 위해 제 목표는 잠시 미뤄둬도 만족해요.”
이상봉=“음…. 글쎄 저는 짐을 지우고 싶진 않은데. 저는 즐기면서 일하지 못했어요. 어쩔 땐 패션의 노예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죠. 하지만 아들은 즐기면서 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이후 사진 촬영을 위해 함께 포즈를 취하고 보니 부자가 참 많이 닮은 듯했다. 웃는 모습은 특히 똑 닮았다. 세대도, 성격도 다른 둘이지만 이제 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지가 됐다. 이상봉 씨는 “국내 패션계에서 부자가 대를 이은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며 흐뭇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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