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한식 전문가 한영용의 ‘나의 스승, 나의 할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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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5일 03시 00분


이문열 영양 생가 머물며 ‘氣와 心 만드는 食철학’에 미치다

한영용 교수(왼쪽)가 경북 예천군 용궁면의 용궁양조장에서 권순만 사장과 전통주 발효비법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예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한영용 교수(왼쪽)가 경북 예천군 용궁면의 용궁양조장에서 권순만 사장과 전통주 발효비법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예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혼이 담긴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20여 년 전 음식에 입문한 후 늘 이 말을 듣고 살았다. 하지만 어느샌가 나는 무뎌진 칼처럼 무감해지고 있었다.

동시에 혼이 담긴 요리에 대한 중압감이 찾아왔다. ‘한식계의 중견으로서, 후학을 지도하는 위치에서 부족한 것은 없는가’ ‘나도 부끄럽지 않은 음식철학을 정립해야 하는데…’ ‘내가 참된 조리의 길이 아닌, 생계의 방편에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가’ 같은 생각에 고민을 거듭했다.

마음속의 숙제는 풀리는 듯하다가도 풀리지 않았다. 의문과 질문이 끊임없이 솟아났다.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마음속에선 무언가가 부족하고 허전했다. 옛 선현들이 말씀하신 ‘기운과 정신’을 음식으로 어떻게 풀어놓을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내 마음이 흔들리니 내 음식도, 그것의 맛도 흔들리는 것 같았다.

경상도 음식에 반한 전라도 사람

이렇게 고심하던 중 지인과 함께 찾아간 곳이 ‘오지 중의 오지’라고 불리는 경북 영양이었다. 처음엔 별다른 뜻 없이 향했지만 경북 북부지역 여행은 경이와 감동의 연속이었다.

나는 본래 전남 나주 태생인지라 남도가 가장 멋지고 음식이 맛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 편견과 오만이 태풍을 만난 나뭇잎처럼 날아가 버렸다. 나름대로 전국을 방랑했지만 그렇게 이국적이고 빼어난 풍광은 처음이었다. 음식도 놀라웠다. 오랜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은 전통음식과 재료 그대로의 맛을 살리는 조리법이 내 입을 사로잡았다.

특히 고추가 많은 만큼 다양한 고추요리가 인상적이었다. 밀가루와 콩가루에 무쳐 쪄낸 고추찜이 단연 으뜸이요, 녹색 풋고추를 갈아 담는 열무김치, 고추를 먼저 소주에 넣었다 간장에 담그는 고추장아찌도 일품이었다. 고추를 설탕과 조청에 발효시켜 만드는 분홍빛 고추차는 매콤하면서도 시원한 여름철의 별미였다.

오지에 숨어 있는 보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너무 많은 것을 한번에 볼 수 없어 아예 집을 장만해 살아보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영양 두들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을 지은 안동 장씨 할머니의 채취가 서린 곳이기도 했다. 운 좋게 소설가 이문열 씨의 생가에 머물게 되어 영양 살이가 시작됐다. 2003년 겨울부터 일주일에 3, 4일 동안 영양에 머물며 음식공부를 하는 생활이 1년 반 동안 이어졌다.

82세까지 음식디미방 쓴 장씨 할머니

우선 음식디미방을 다시 읽어가며 그 속의 기품과 전통을 재현하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옛 조리서 연구모임을 이끌며 가졌던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법이 아니라 책에 담긴 철학과 행간의 의미를 짚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났다.

안동 장씨 할머니에 대한 인물탐구에 들어갔다. 알면 알수록 찬탄과 경이로움에 숙연해졌다. 장계향(안동 장씨 부인의 본명) 할머니는 7남 3녀를 훌륭히 양육했으며 시서화에도 능했다. 흉년과 어려운 때에 죽과 밥을 지어 노인 걸인 고아 등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니 인근에서 모두 그분의 은혜를 칭송했다. 지금도 장씨 할머니의 숭고한 뜻은 불천위제사(不遷位祭祀·영원토록 위패를 옮기지 않고 모시는 것을 나라에서 허락한 제사)로 기려지고 있다. 영양에 오지 않았으면 영영 모를 내용이었다.

조리인으로서 음식의 기술과 비법에만 집착했던 것이 심히 부끄러웠다. 나는 그동안 장씨 할머니의 정신적 사상과 철학은 모르고 눈에 보이는 것만 논하고 있었다. 장씨 할머니는 평생 봉제사와 접빈객의 삶을 살며 익힌 것을 82세까지 기록하고 83세에 돌아가셨다.

이런 경험은 영양에서의 생활을 단순한 기술 연마가 아닌, 정신·철학적 기행으로 만들어 주었다. 영양 생활을 하면서 ‘사람의 기운과 정신은 다 쌀에 따라 나온다’는 동의보감의 내용이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기(氣)나 정(精)자에 다 쌀 미(米)자가 들어가는구나.’ 물 맑고 인심 좋은 영양에서의 경험은 먹는 것(食)이 사람의 기운(氣運)과 심성(心性)까지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기에 충분했다.

음식 가르쳐 주신 여러 할매들

영양에서 만난 또 다른 멘토는 일월산에 사시는 이을옥 할머니다. 나는 지금도 이분을 가슴속 한 줄기 불씨로 알고 스승으로 모신다. 팔십 가까운 고령에 해발 700m 고지에서 살아가시는 할매의 품성과 몸가짐에는 그냥 고개가 숙여진다. 그 연세에도 항상 새색시같이 다소곳한 모습은 이분이 평생 어떤 자세로 살아왔는지를 대변해 준다. 할매는 내게 마음이 담긴 음식 만들기, 즉 조리의 심법(心法)을 가르쳐주셨다.

이 외에도 내게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신 여러 어르신이 계신다. 나는 이분들을 보고 배우며, 인물 연구를 통해 조리정신과 자세를 익히려 했다.

먼저 산중의 민물고기탕 맛을 가르쳐주신 낙동할매를 잊을 수 없다. 산이 깊은 영양엔 흐르는 강줄기도 제법 크다. 그 강에서 잡히는 민물생선으로 끓이는 탕은 산초와 방아 잎이 들어가 향긋한 냄새가 난다. 맑고 붉은 영양고추 국물에 채소는 무와 대파만 넣는다. 낙동할매는 항상 머리에 헤어젤을 발라 정갈한 부침머리 스타일을 고집하시는데, 행여 음식에 머리카락이 떨어질까 조심해서다.

영양읍내 대호식당 할매는 팔십이 넘은 연세에도 식당을 운영하며 옛날 잔칫상을 선보이신다. 배추김치 갓김치 곰취김치 고사리나물 무나물 동아정과 두릅장아찌 명이장아찌 등을 계절마다 돌아가며 차리신다. “산간에선 소가 귀해 폐백에도 육포나 갈비는 차리기 힘들었제. 떡 한 상자하고 술 한 병이면 폐백이 갖춰진기라” 하시며 양반 동네 음식은 절제와 소박함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거듭 말씀하신 것이 기억에 새롭다.

나는 요즘도 마음이 울적하거나 혼자 생각할 것이 있으면 영양을 비롯한 경북 북부지역을 찾는다. 그동안 나를 키우고 가르치신 어르신들의 은혜를 생각하며, 앞으로도 더 자신을 갈고닦아 그분들의 뒷모습이라도 닮아 가리라 다짐해 본다.

한영용 국가제사예찬연구원장·청운대 겸임교수(식품영양학) cookka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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