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슈]‘오늘’ 이정향-‘도가니’ 황동혁 감독이 말하는 ‘상처와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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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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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투성이 대한민국, 용서를 너무 쉽게 말해요”

이정향 감독(왼쪽), 황동혁 감독.
이정향 감독(왼쪽), 황동혁 감독.
다음 주 영화 두 편이 막을 내린다. 한 작품은 지난 2개월 동안 전국을 공분(公憤)으로 들끓게 한 ‘도가니’고, 다른 작품은 작지만 웅숭깊은 공감을 부른 ‘오늘’이다.(‘오늘’은 안타깝게도 개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대에서 내려올 것 같다.) ‘도가니’는 한 장애인 특수학교의 교사들이 제자들에게 가한 무도한 폭력과 이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법적 처분을 다뤘다. ‘오늘’은 위안을 받아야 할 살인 희생자의 유족들이 외려 “가해자를 용서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도록 만드는 현실을 짚었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부조리한 단면들이다.

‘도가니’의 황동혁 감독(40)과 ‘오늘’의 이정향 감독(47)이 동아일보 주말섹션 ‘O2’와 만났다. 아동·장애인 성폭행 범죄에 대한 형량과 공소시효를 강화하는 이른바 ‘도가니법’ 제정과 해당 특수학교 폐쇄라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황 감독이나, 진중한 주제에 지레 주춤한 투자·배급사와 극장으로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관객을 향해 가슴앓이를 하는 이 감독이나 마음에 담아둔 말이 적지 않았다.

“누가 용서를 해요, 내가 용서를 안 했는데”


‘도가니’에서 교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청각장애아 민수는 수화로 이렇게 말하며 울부짖는다. 경제적으로 무기력한 그의 할머니가 학교 측과 합의를 해서 소송이 취하됐기 때문이다. ‘오늘’에서도 남편을 잃은 중년 여성은 “(가해자에게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야겠다”며 가슴을 친다.

황동혁=
(피해자들은) 용서가 안 되는데 (가해자들은) 이미 용서를 받은 거잖아요. 제도와 관습에 따라 법적인 면죄부를 준 거고요. 이렇게 쉽게 법 안에서 용서가 돼버리는 것인가, 그런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런 일들(성폭행·성폭력)이 벌어져도 사람들은 그냥 “죽일 놈들” 하고는 그만이잖아요. 가해자는 편하게 살고 피해자는 평생 짐을 안고 살아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을 테고, 앞으로도 비일비재할 수 있을 테고요.

이정향=맞아요. ‘도가니’에서 가해자들은 마치 합의를 하면 자기가 지은 죄가 사해진다고 생각하잖아요. 합의라는 건 단지 법적 처벌을 요구하지 않는 것일 뿐인데 심지어 죄책감마저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그런 사회는 웃기잖아요.

황=그 특수학교의 교장(역시 아동성폭행범으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음)이 몇 년 전에 췌장암으로 죽었다고 해요. 교회 장로였던 그 사람이 죽기 직전에 “주님, 용서해주세요”라고 외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답답했어요. 이 교장은 한 번도 (자기가 성폭행한) 아이들한테는 용서를 빈 적이 없는 거죠.

이=1985년 일본항공(JAL) 민항기 추락사고가 나자 책임을 지고 사퇴한 사장은 이후에 자비를 들여서 유족들을 찾아다니며 사과를 했다고 해요. 가해자가 정말로 반성한다면 이렇게 피해자 가족에게 먼저 사과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래도 부모님을 사랑해야지”

‘오늘’에서 주인공 다혜(송혜교)는 아버지에게 상습적으로 구타를 당하는 여학생 지민이 증오를 드러낼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다혜도 어렸을 때 이혼한 부모가 그래도 자신은 사랑했을 것이라며 애써 합리화하며 고통 받는다.

이=제 영화 속의 다혜, 지민, 그리고 다혜의 약혼녀를 오토바이로 치어 살해한 소년범이 겪은 가장 끔찍한 문제는 부모로부터의 피해였어요. 저는 그들이 지닌 상처의 원인은 부모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죠. ‘한국의 연쇄살인’이란 책을 쓴 경찰대 표창원 교수를 만났더니 “범죄자 뒤에는 반드시 문제 부모가 있다”고 말하더군요.

황=특수학교 같은 기관에 맡겨진 아이들에겐 선생님들이 부모와 마찬가지예요. 그 사람들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거죠. 그 때문에 특히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교사들에게 그런 짓을 당해도 거부하거나 반항하기 힘들어요. 그런 학대를 스스로 합리화하려는 과정이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아마 상처도 더 오래 남을 것 같고요.

이=어린 학생들은 부모 대신인 교사가 자신을 해롭게 할 리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교사는 그런 심리를 이용하는 거죠. 아동학대 중 가장 나쁜 게 자식학대라고 봐요. 자기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는 부모가 자기를 때리니까 아이들이 너무 힘든 거죠.

황=24시간 내내 같이 생활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나쁜 짓을 했다는 걸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고, 받아들인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도 힘들고, 말을 해도 어차피 ‘침묵의 카르텔’ 안에 묻혀버리니까 그런 일이 오랫동안 지속됐어요.

이=부모에게서 받은 분노를 자식은 ‘자기를 괴롭히거나, 부모에게 풀거나, 아니면 제3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해소하는데 마지막 경우가 참 많지요. 그들에게 저는 “부모에게 열망했던 사랑을 기대하지 말고 네가 스스로를 아끼며 사랑하게 되면 자신의 소중함을 알고, 그로 인해 타인의 소중함도 알게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없습니다”


‘도가니’ 마지막 부분에서 시위를 하던 인호(공유)는 죽은 민수의 영정을 끌어안고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며 이 말을 되뇐다. 영화는 청각장애인이었던 민수를 지칭하지만, 이런 사건이 주변에서 벌어지는데도 입 막고, 귀 닫는 우리 자신에 대한 비유로도 읽힌다. ‘오늘’에 나오는 살인 희생자 가족들의 답답함이 이럴지 모른다.

황=그 학교 교사 중에 오래전에 저지른 성추행 정도만 입증된 사람은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어요. 이들은 자신들이 법적으로 무죄라고까지 생각하는 거예요. 어처구니가 없더라고요.

이=전문가에게 물어보니 공소시효를 두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살인죄를 저지른 가해자도 15년 동안 힘들게 살았을 터인데, 그 정도면 됐다는 심리도 있다는 거예요.

황=그저 낭만적인 생각이지요. 저는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는 거냐’고 했을 때 말이 안 되는 게 많으면 정의(正義)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도가니’의 경우가 그랬죠. 어떻게 가해자들이 이렇게 쉽게 풀려날 수 있는 것인가. 소설적, 영화적 과장이 있다고 해도 실제 사건을 들여다봤을 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은 거죠.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나면 그만큼 정의로운 사회는 아닌 것 같아요.

이=제가 시나리오를 쓸 때도 기준 잣대는 ‘상식선’이었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말이 되나,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문제제기를 하면서 썼어요. 정답은 상식에 있지 않나 싶어요.

“용서란 미움을 가장자리로 밀어내는 것, 서두르지 말아요”


‘오늘’에서 살인범에게 딸을 잃은 카페 여주인이 주인공 다혜에게 한 말이다. ‘도가니’의 피해 학생들이 마음속에서 악몽 같은 기억을 지우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황=이런 일들이 재발되지 않는 것이 궁극적인 치유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혹시 다시 일어난다고 해도 가해자에게 상식적으로 납득 가능한 처벌이 이뤄져야만 피해자, 피해자 가족 등 고통 속에 사는 분들이 조금이나마 치유가 되겠지요. 사람들이 ‘도가니’를 보고 자기 자신이나 주변을 잠시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이=100% 치유라는 건 없지요. 단지 감정이 최악의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좋아진다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살인 희생자 유가족이 가장 원하는 건 “어떡해요”라고 말하면서 같이 울어주는 거래요. 용서를 할 수 있는 권리는 오직 피해자에게만 있다는 걸 존중해줬으면 해요. 용서를 재촉하지 말아주세요.

우연찮게도 두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 두 감독은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를, 고속철보다는 기차를 좋아한다고 했다. 착하고 따뜻한 아날로그적 감성이다.

정리=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사진=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 이정향 감독은… ::

‘미술관 옆 동물원’(1998년). ‘집으로’(2002년)를 만들어 비평과 흥행 양쪽에서 모두 성공했다. 서강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1980, 90년대 유명 감독들을 배출한 영화아카데미를 나왔다.

:: 황동혁 감독은… ::


황동혁 감독은 2007년 미국 입양아의 눈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살펴본 ‘마이 파더’로 데뷔했다. 서울대 신문학과(현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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