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의 역사의식은 혼란스럽다. 주변국에 대한 오만함, 서구의 수탈로 인한 열패감, 주요 2개국(G2) 등극에 따른 자신감 등이 아직 채 정리되지 못한 채 범벅이 돼 있다.
‘세계 구도를 이해하는 첫 책(看G世界格局的第一本書·난팡출판사)’은 근·현대 역사를 해석하는 새로운 기준을 중국인들에게 제시한다. 외국인들에게는 중국이 새로 정립하려는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저자 왕웨이(王偉) 씨는 근·현대사를 서구, 특히 미국 자본의 이익 추구에 따른 결과로 이해한다. 지난 100년 동안의 주요 사건을 분석하면서 그 이면에 있는 자본의 논리를 소개한다. 한마디로 이재(理財)에 밝은 중국인들의 특성에 맞게 풀어냈다.
중국이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고 부르는 6·25전쟁도 이런 기준으로 해석했다. 우리로서는 부담스럽지만 저자는 전쟁의 주요 원인을 미국 기업들의 이윤율 저하에서 찾고 있다.
1948년 11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11개월간 미국 경제는 실업률이 7.9%로 상승하고 국내총생산(GDP)이 0.5% 감소하는 등 침체기를 겪었다고 책은 지적한다. 2차 대전 이후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한 과잉설비가 경제에 부담을 주었다는 것이다. 6·25전쟁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1952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발언에 따르면 그 전 해 미국의 농업과 상업 이윤율이 대폭 개선됐고 GDP는 정상 수준의 두 배인 8%에 달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쟁이 가져다 준 경제적 이익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화폐 시장에서도 전쟁이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미국은 막대한 달러를 찍어낸 뒤 이 돈으로 유럽과 일본으로부터 군수장비를 사들였다. 달러 발행량이 늘어나면 가치가 하락하지만 이는 시차를 두고 발생한다. 이 때문에 유럽과 일본이 받은 달러 가치는 액면가보다 떨어지게 됐고, 결과적으로 미국은 싼값에 물자를 조달한 셈이 됐다. 전쟁 비용의 일부를 외국 기업에 청구한 셈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달러가 대규모로 유통되면서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이는 미국 경제의 황금기를 보장하는 핵심 기반이었다.
저자는 현 세계 구도를 산업의 국제 분업 양상에 따라 4단계 피라미드로 나눈다. 각 나라는 상위국, 차상위국, 차하위국, 하위국으로 분류된다. 각 층에 소속된 나라는 아래층 국가에서 이익을 취하고 위층에 이익 일부를 상납하는 구조다. 미국은 유일한 상위국이며 중국은 아직 차하위국에 머물러 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미국은 반세기 동안 전 세계 경제를 미국 중심의 단일 구도에 포함했고, 여기서 벗어나려는 나라가 있다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제압했다고 책은 말한다. 일본이 1985년 플라자협정(엔화의 대폭적인 평가 절상)의 결과로 장기 불황에 빠진 게 대표적 사례다.
올해 3월 출간된 이 책은 중국 언론과 학계에서 많은 호평을 받았다. 충실한 자료 조사와 탄탄한 논리 전개 덕분이기도 하지만 미중 간 대립각을 확실히 부각해 중국인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 때문인 것도 같다.
서구식 보편적 질서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책이 마뜩잖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거부만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은 기존 질서를 수용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제시하는 나라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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