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최성규 씨(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 과정 2학년·왼쪽)를 인터뷰하는 벨기에 공영방송 RTBF의 다큐멘터리 취재팀. RTBF는 한국 음악가들이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비결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 씨(24·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는 난감한 표정이었다.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한예종 김남윤 교수 연구실. 신 씨는 벨기에 최대 공영방송인 RTBF의 다큐멘터리 취재진과 인터뷰를 앞두고 있었다. 프랑스어 통역을 맡은 황희영 씨가 △클래식을 시작하게 된 이유와 공부법 △왜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에 나갔나(신 씨는 2008년 이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무대에 서기 전 집중력을 높이는 비법이 있는가 등의 질문이 나올 예정이라고 귀띔해주자 신 씨는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일이어서 답하기가 쉽지 않겠다”며 웃었다.
벨기에 방송이 한국 음악계의 탁월한 성취에 얽힌 ‘미스터리’를 취재했다. 벨기에의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이 취재의 계기였다.
1990년대만 해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예선을 통과한 한국인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지난해엔 예선 통과자의 29%가 한국인이었고 결선 진출자 12명 중엔 5명이었다. 올해는 소프라노 홍혜란 씨가 성악 부문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벨기에 취재팀은 이런 ‘불가사의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에 대해 직접 한국에 와서 알아보기로 했다.
한국을 찾은 방송진은 다큐멘터리 감독 겸 작가를 맡은 티에리 로로와 피에르 바르를 비롯해 음향 카메라 기술진 등 4명. 1∼5일 한예종과 서울대, 한예종 영재교육원, 음악영재의 집 등을 방문해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황 통역사는 “질문지를 받았을 때 ‘한국 사람들이 왜 서양 클래식을 하나’ ‘음악을 취미로 하는가,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같은 질문을 보고 이들이 한국의 돌풍을 얼마나 의아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홍 씨를 가르친 최상호 한예종 교수는 △학생이 콩쿠르에 나가서 꼭 상을 받아야 하는가 △왜 독일로 유학을 많이 가는가 등의 질문을 받았다. 이영조 한예종 한국영재교육원 원장에게는 △한국의 클래식 역사가 짧은데 어떻게 이런 성과가 가능한가 △너무 어릴 때부터 경쟁에 휘말리는 것이 아닌가 등에 대해 물었다.
최 교수와 이 원장, 박종원 한예종 총장 등은 “한국 음악도들이 거둔 성과는 선배 세대가 뿌린 씨앗을 거두고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원장은 “한민족에는 예술성이 깃들어 있다. 또 부모와 스승을 동일하게 여기는 순종의 전통이 학생들에게 정신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취재진은 “순종이 창의력을 죽이지 않는가”라고 반문했고 이 원장은 “그걸 보완하기 위한 교육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취재진은 ‘한국의 미스터리’를 밝힐 수 있었을까. 취재 막바지에 만난 감독들은 이렇게 답했다. “한국의 경제 성장이 한국 음악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부를 축적하면서 음악과 예술에 투자했고 어머니들도 자녀에게 더 관심을 쏟았다.” “한국인은 표현력이 좋고 개방적이다. 이런 면이 음악가들의 성과에 한몫했다고 본다.”
취재진이 우려하는 부분도 있었다. 로로 감독은 “해외 콩쿠르 입상 후 한국인들이 고국에 돌아가 활동할 만한 무대가 많이 있는지 염려스럽다”고 의미 있는 지적을 했다. 바르 감독은 “유럽에 비해 수련 기간이 엄격하다. 개인으로서의 삶을 희생해야 한다. 그래서 좋은 성적을 냈겠지만 안타까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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