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앞둔 수험생에게는 엿을 먹인다. 끈적끈적한 엿처럼 시험에 찰싹 붙어 합격하라는 축원의 뜻이 담겨 있다. 수험생에게 엿을 먹이거나 선물하는 전통은 어제오늘의 풍속이 아니다. 요즘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엿을 선물한다. 예전 대학별로 본고사를 볼 때는 시험 당일 교문에 엿을 덕지덕지 붙였다.
멀리는 조선시대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보러 한양으로 떠나는 유생의 괴나리봇짐 속에는 요기를 겸한 합격 기원의 엿이 들어 있었다. 시험장인 과장에까지 엿장수가 들어와 난장판을 벌였다. ‘영조실록(英祖實錄)’에 엄숙해야 할 과장에 엿장수들이 들어와 시험장을 어지럽혔으니 감독을 소홀히 한 금란관(禁亂官)을 문책해야 한다는 기록이 있다. 뒤집어보면 조선의 유생들도 과장에서 엿을 먹으며 간절하게 급제를 빌었음을 알 수 있다.
보통 합격을 빌며 엿을 먹는 이유를 끈끈한 접착력 때문으로 알고 있다. 합격 불합격을 “붙었다” “떨어졌다”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엿의 성질을 합격에 연결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말한다. 일리는 있지만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풀이다. 오직 끈끈한 성질 때문에 엿에다 합격의 소원을 담은 것은 아니다.
엿은 전통적으로 기쁨을 상징하는 음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부터 조상들은 엿을 먹으며 원하는 일이 이뤄지게 해달라고 빌었고 또 성취의 즐거움을 나누었다. 엿을 뜻하는 한자를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엿은 한자로 이(飴)라고 쓴다. 파자(破字), 즉 글자를 풀어보면 먹을 식(食) 변에 기쁠 태(台) 자로 이뤄져 있다. 태(台)는 세모처럼 생긴 사(사) 자 아래에 입 구(口)로 구성됐다. 그러니까 입을 세모처럼 방실거리며 기뻐한다는 뜻이다. 먹으면 입을 방긋거리며 웃고 기뻐할 정도로 좋은 것이 바로 엿이라는 음식이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우리나라 덕담은 원하는 일이 성사될 것이라는 가정 아래 미리 축하를 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수험생들에게 엿을 먹이는 것 역시 합격의 기쁨을 미리 맛보라는 축원의 의미가 담겨 있다.
엿은 이렇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음식이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우리는 엿에다 특별한 소망을 담아서 먹었다. 지금은 엿이 워낙 흔해서 별 의미가 없지만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정월 초하루 설날이나 대보름날이면 곡식을 달여 고아 엿이나 조청을 마련하고 소원을 빌면서 먹었다.
이때 먹는 엿을 복(福)을 먹는다고 했는데 복엿을 먹으면 살림이 엿가락처럼 늘어나 부자가 된다고 믿었고, 먹으면서 한 해 동안 즐거운 일만 있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경사스러운 날에 엿을 준비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가 딸을 시집보내는 친정 부모가 시댁에 보내는 이바지 음식이다. 이바지 엿에 대해 요즘은 부부가 끈끈하게 붙어서 백년해로하라는 소원을 담은 것이라고 해석한다. 일부에서는 시집 식구들이 엿을 먹고 입이 달라붙어 며느리 흉을 덜 보도록 해달라는 소원을 담은 것이라는 농담도 한다. 아무튼 시집 식구 “엿 먹이는 일”에는 딸을 낯선 집으로 출가시키는 친정 부모의 애틋한 정이 담겨 있다. 하지만 원래 이바지 엿에는 두 집안이 혼인을 통해 맺어진 기쁨을 나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엿은 이렇게 먹으면 기쁨을 주는 음식이니 엿을 먹고 수험생들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모두 시험을 잘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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