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고단한 관객들이 저마다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곧이어 펼쳐진 18세기의 고아한 무대. 따스하면서도 부드러운 울림이 객석으로 스며들었다. 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에우로파 갈란테&이언 보스트리지’ 연주회다.
영국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는 그동안 슈베르트 가곡 해석의 권위자로서 한국 무대를 찾았다. 이번에는 18세기 테너들이 불렀던, 오늘날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들을 들고 무대에 섰다. 바로크 바이올린의 거장 파비오 비온디가 창단하고 이끄는 에우로파 갈란테와 함께였다.
생소한 레퍼토리였지만 보스트리지와 고(古)음악의 합일은 관객을 한껏 몰입하게 만들었다. 음량은 풍성했고 세밀한 표현까지 명료하게 들렸다. 역사학자 출신이라는 배경, 깊이 있는 해석으로 ‘학구적인 성악가’라는 수식어를 늘 달고 다니는 이 테너는 비발디의 오페라 ‘폰토의 여왕 아르실다’ 중 ‘잔혹하고 암울한 운명이여’에서는 한껏 격정과 분노의 감정을 토해냈고, 보이스 세레나타 ‘솔로몬’ 중 ‘남풍아 부드럽게 불어라’, 스카를라티 오페라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 중 ‘어리석은 키잡이가 모른다면’에서는 서정적 면모를 아낌없이 드러냈다. 이지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그의 노래에 관객은 동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에우로파 갈란테는 탄탄한 앙상블이 돋보였다. 비발디의 ‘사계’를 파격적으로 해석해 이름을 알린 이 악단은 다시 한번 관객을 놀라게 하기보다는 가볍고 유쾌하면서 활기찬 연주를 선사했다. 기악과 성악은 서로 당기고 놓으면서 치밀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에우로파 갈란테와 보스트리지 조합의 상승 효과는 눈부셨다.
다섯 번이 넘게 이어진 열광적 커튼콜에 보스트리지는 헨델 오페라 ‘아리오단테’ 중 ‘체르자 인피다’를, 에우로파 갈란테는 코렐리의 콘체르토 그로소 d장조 중 마지막 악장을 들려줬다. 연주회가 끝난 뒤 공연장 로비에서 열린 보스트리지와 비온디의 사인회에는 관객들이 위층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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